사라져 가는 용기를 채워주는 말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우리 가족의 단골 칼국숫집이 있다. 넉넉한 양에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황송할 정도의 저렴한 가격, 그리고 입에 쫙쫙 달라붙는 아삭한 겉절이까지 칼국숫집의 미덕을 고루 갖춘 곳이다. 그런데 며칠 전 지나가다 보니 창에 붙은 임대 문의 딱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불과 2주 전에도 그 집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당시 그 어떤 변화에 낌새도 느끼지 못했다. 홀 담당인 여자 사장님은 변함없이 친절하셨고, 늘 새하얀 조리복을 입고 주방 일을 맡은 남자 사장님이 만든 푸짐한 칼국수를 맛있게 먹었다. 워낙 장사 잘되는 곳이라 칼국수 집 건물 위층을 임대하려는가 보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쳤다.
며칠 후 뜻밖의 진실을 마주하게 됐다. 다시 지나다 보니 ’ 임대 문의‘ 딱지가 향한 곳은 위층이 아니라 칼국숫집이었다. 추가로 붙은 안내문에 그 이유가 담겨 있었다. 사장님의 건강 악화로 영업을 더 할 수 없게 됐으니 집기 양도를 원하는 분은 연락 달라는 내용이 추가됐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점심시간이면 줄을 서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손님이 끊이지 않던 가게를 갑자기 접을 정도라면 사장님이 중병에 걸린 게 아닐지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개업 때부터 ’ 오늘은 칼국수 먹자!’ 하면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그 집으로 향하던 우리 가족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경기가 나쁘니 자고 일어나면 골목마다 문을 닫는 가게들이 보인다. 변화무쌍한 자영업의 세계에서 10년 넘게 한자리를 지키며 흔들림 없이 폼을 유지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경쟁자들의 도발,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자잿값과 인건비, 널을 뛰는 임대료까지... 위기가 넘쳐난다. 그 냉혹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업 초기 여느 식당들처럼 있던 잡다한 메뉴를 정리하고 칼국수에 집중했고, 피크시간에 도와주던 아르바이트생까지 정리하면서 코로나 고비를 넘겼다. 개업 초반 몇 해는 휴일도 없이 부부 사장님 둘이 몸을 갈아 지킨 가게가 건강 악화로 인한 폐업이라는 결과로 돌아올지 누가 알았을까? 중년 이후 동네 골목의 작은 칼국숫집에 인생을 걸었는데 허망한 결과를 받아 든 두 사장님의 심정이 어떨지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 칼국숫집에서 멀지 않은 번화가로 향하는 골목 끝, 오래 닫혀 있던 와인바가 오랜만에 들썩였다. 프랑스 파리 뒷골목 분위기 물씬 풍기던 인테리어가 사라지고, 일본식 꼬치구이 전문점이 생겼다. 철거부터 세팅까지 전문 업자들이 아닌 청년 둘이 꼬물꼬물 몇 주 고생하더니 얼마 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매일 까만 옷에 먼지가 하얗게 쌓이도록 뚝딱거리며 만든 그 공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숯불을 피우고 꼬치를 구웠다. 오픈 초라 그런지 친구나 지인이 손님으로 와 있는지 테이블에 함께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을 종종 본다. 젊은 사장님들의 꼬칫집은 이 냉혹한 자영업의 세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달이 지면 새로운 날을 시작하는 해가 떠오른다. 언제나 영원할 것만 같은 것들이 작별 인사도 없이 사라지고, 사라진 자리에 또 새로운 무언가가 자라난다. 칼국수 집보다 자주 가기 힘든 업종이긴 하지만, 동네 주민의 의리로 꼬치구이 전문점에 한 번쯤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폐업이 전염병처럼 퍼지는 불황의 늪에서 용기 있게 시작한 두 젊은 친구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칼국숫집의 갑작스러운 폐업과 꼬치구이 전문점의 소박한 개업을 지켜보며 생각이 늘었다. 인생은 언제 닥칠지 모를 갑작스러운 변수의 연속이니 끊임없이 시도하고, 후회 없이 도전하라고 두 가게는 말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겁만 늘어 뭐든 시작하기를 주저하는 내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