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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pr 13. 2018

여행길에서 만난 냥선생님들께서 알려준 인생의 진리

길 위의 철학자 냥선생님, 고맙습니다

    

미세먼지의 공격만 없다면, 매일매일 10km씩 중랑천을 걷는다. 운동 겸 긴 산책 겸 2시간이 훌쩍 넘는 사색의 시간이다. 여느 때처럼, 8시 뉴스가 시작할 무렵 출발해 한 20분쯤 지났을까? 낯익은 뒤태가 보인다. 시장 근처의 공영주차장에서 자주 출몰하는 치즈 냥이다. 흐르는 중랑천을 느긋이 바라보고 있는 익숙한 뒤태. 시장 근처라 먹을 게 많아서 그런 걸까? 아님 새끼라도 가진 걸까? 한층 두툼해진 뱃살이 눈에 뜨인다. 살짝 휘파람을 불어 냥님의 관심을 끌어 보았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도 공격성이 없는 안전한 사람이라는 걸 직감했는지 느긋한 걸음걸이로 나에게로 다가온다. 그분의 영접이 신기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여 지그시 바라보았다. 냥님께서는 은혜라도 내리는 듯 내 종아리 쪽으로 다가와 가볍게 등을 비비고 간다. 아! 이것이 바로 집사 간택이구나. 이것이 바로 집사의 길로 향하는 특급열차구나 싶었다. 사실 냥님들에게 이런 따스한 대접을 집 근처에서 받긴 처음이다.     


고층 아파트가 없는 나지막한 단독 주택과 빌라가 늘어선 우리 동네에서 고양이는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헤집는다고, 밤새 울어대는 소리에 잠을 못 잔다고, 지붕 위를 우당탕탕 뛰어다닌다고 주민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다. 물론, 스트릿냥이들을 위해 주기적으로 사료를 주며 챙겨 주는 분들도 계시긴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냉대와 포화 상태인 냥이밀도 때문에 영역 다툼이 심해서인지 도시 거리의 고양이들은 늘 긴장과 두려움 속에 산다. 사람의 그림자라도 보인다 싶으면 강직 상태로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혹시나 나를 헤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가득한 눈빛이 늘 장전되어 있다.     


여행지에서 본 고양이들은 내가 일상에서 봐왔던 고양이들과 달랐다. 햇빛 잘 드는 명당에는 늘 그들이 모여 앉아 식빵을 굽고 있곤 했다.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와도 도망가기는커녕 “자네 왔는가?”라는 여유로운 자태로 손님을 맞이한다. 그들은 한없이 여유로웠으며 자유로웠고 또 너그러웠다. 사람들의 손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되레 즐기기를 넘어 귀찮아하는 지경이다.  


고양이의 나라, 일본. 어느 곳을 가도 쉽게 고양이를 만날 수 있고, 거리 곳곳에서 고양이를 향한 일본인들의 뜨거운 사랑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단풍이 지기 시작했던 가을날, 교토 철학의 길 끝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제대로 식빵을 굽고 있었다. 중심부를 지난 길 끝이라 오가는 사람도 적은 그곳에서 제대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지는 해에 등을 지지듯 해가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잠깐씩 깨서 조금씩 움직였다. 한참을 그런 고양이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자니 사람의 시선이 귀찮은 듯 느긋한 걸음걸이로 나무 숲 속으로 사라졌다. 철학의 길 근방에 사는 고양이라 그런가? 철학의 길, 그 고양이들은 고양이의 인생철학을 몸으로 말했다. “내가 좋으면 하는 거고 싫으면 안 할 거야”라고. 철학의 길 고양이들이 전해준 고양이의 인생철학은 늘 남의 시선에, 타인의 평가에 연연했던 나의 지난날을 반성하게 해 주었다. 철학자 냥선생님, 고맙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의 몬세라트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건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수도원도, 수도원의 상징이라는 검은 성모상도, 세계 3대 소년 합창단이라는 몬세라트 수도원의 소년 합창단도 아니었다. 가우디가 영감을 받았다는 경이로운 절경을 병풍 삼아 꾸벅꾸벅 졸고 있던 고양이었다. 대형 관광버스가 토해낸 관광객들이 우르르 내리면 단잠에서 깨 특유의 스트레칭으로 몸을 한 번 푼다. 그리곤 본격 영업에 나선다. 몬세라트의 고양이는 귀신같이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 인간을 찾아낸다. 아니 어쩌면 그 귀여운 얼굴로 호의 없던 사람도 호의가 충만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리는지 모르겠다. 한 것 마음이 여유로운 관광객 근처를 알짱거리며 한껏 애교를 부리고 카메라의 피사체가 되어준다. 모델일이라는 노동을 한 대가로 크고 작은 간식들을 받아먹다. 나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고양이가 한동안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 고양이는 분명 눈으로 말했을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배곯지 않고 싶으면 뭐라도 해. 타고나기를 이렇게 귀여운 나도 노력이란 걸 한다고. 그런데 대체 넌 뭘 하고 있는 거냥?” 몬세라트의 고양이는 무전취식을 하지 않았다. 몬세라트의 기암괴석들을 놀이터 삼아 놀다 “인간에게 귀여움을 내뿜어라 “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다했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무언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던 날들이 있었다. 로또를 사지도 않고 로또 1등이 되면 어떻게 쓸까?부터 고민했다. 소개팅 제안이 오면 만나기도 전에 나랑 안 맞으면 어쩌나 걱정부터 했다. 그런 나에게 몬세라트의 고양이들은 말했다. 고민은 그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라고.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 골목에서 한 귀퉁이에서 만난 고양이는 동네의 분위기와 딱 맞는 자세로 나를 맞이했다. 술이 거하게 취한 중년의 아저씨 그 자체였다. 햇빛 잘 드는 골목, 집 담벼락에 기대 쩍벌 자세로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인생 뭐 있냥? 기분 좋게 한잔 걸치고 술 깰 때까지 햇빛 따땃한 곳에서 쉬었다 가라구~" 고양이가 실제로 와인을 취하도록 마시진 않았겠지만 고양이의 자세에서 프로 술꾼의 면모를 느꼈다. 분명 그 동네의 공기 속에는 와인의 성분들이 녹아 있을 테니, 포르투의 고양이들은 어쩌면 나보다 많은 양의 와인을 마셔왔을 수도 있다. 소주 한잔만 마셔도 온 몸에 빨간 땡땡이들이 생기는 타고난 알쓰(알콜 쓰레기)라 술자리를 별로 즐기지 않았다. 남들에게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이런 나에게 포르투의 고양이들은 말했다. 과하지만 않다면 빡빡한 일상에 술은 건전한 윤활유가 된다고. 좀 쉬어가도, 좀 늦게 가도 결국 너는 목적지에 닿게 될 거라고.       


제주 한동리의 한 게스트 하우스에 사는 “돼지”는 개냥이다. 여기서 돼지는 진짜 돼지가 아니라 고양이의 이름이다. 많은 사람이 들고 나는 게스트 하우스에 사는 고양이답게 사람들이 오가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멋진 턱시도를 차려입었지만 턱시도 사이로 튀어나온 애교 뱃살이 매력 포인트다. 게스트 하우스 도착 첫날, 짐을 풀자마자 옥상으로 향했다.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이 보고 싶어서 한참을 멍하니 혼자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내게 가장 먼저 다가온 존재가 바로 돼지다. 게하의 마스코트 개냥이답게 경계심이 1도 없이 처음 보는 나의 무릎에 앉았다. LTE급 진도 변화에 잠시 당황했지만, 우리는 함께 말없이 일몰을 감상했다. 해가 바닷속으로 사라지자, 돼지도 볼일이 끝났다는 듯 스윽 사라졌다. 다음날 조식을 먹고, 배를 꺼뜨리기 위해 마당의 해먹에 누웠을 때, 돼지는 다시 내 곁으로 다가왔다. 오래된 연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누운 해먹을 침범해 내 배 위에 자리를 잡았다. 돼지가 내뿜는 온기가 고스란히 내 몸에 느껴졌다. 그 온기 속에서 돼지가 하는 말이 느껴졌다. "먼저 다가가는 걸 두려워하지 마.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면 상대방의 마음도 쉽게 열려. 먼저 손을 내밀어 봐. 별거 없다냥~"    



어쩌면 세상 어디에서 고양이의 행동 습성은 똑같을 수 있다. 귀염귀염 한 얼굴, 폭신폭신한 발, 햇빛 샤워를 하며 꾸벅꾸벅 조는 잠 많은 성격... 그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고양이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에 따라서 고양이를 다르게 느낀다.     


누가 나를 헤치지는 않을까? 내 영역을 침범하는 자가 있는 건 아닐까? 바짝 긴장하고 날 선 상태로 사는 일상. 그래서 그런 상태의 고양이만 보였나 보다. 반면 여행지에서는 낭만을 즐기는 고양이를 만나게 된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벗어나 여유 가득한 여행을 누리면 자연스레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세상 근심 없이 한가로운 고양이들이 눈에 뜨이나 보다. 그래서 여행길에서 만난 고양이 선생님들의 한마디 묵직하게 다가온다.      


“여행하는 듯 살고, 사는 듯 여행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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