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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15. 2018

낯선 나라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

제일 먼저 반응하는 것은 역시 '코'


  

긴 비행을 마치고 비행기 안, 안전벨트 착용 램프가 꺼진다. 그 순간부터 내 몸에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흐른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수속을 밟으러 향하는 길에는 온통 새로운 것들이 넘쳐 난다. 낯선 글자의 광고판, 시니컬한 표정의 공항 직원, 연신 외국 방송을 틀어 놓은 듯 생경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등등 일순간 외국 영화의 한 장면 속에 풍덩 빠진 기분이다. 세계 어디나 비슷비슷한 공항 안에서의 각종 수속과 풍경들이 2D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반면 공항 밖으로 빠져나오는 문을 여는 순간, 4D 영화를 넘어 현실이 펼쳐진다. 큼지막한 캐리어를 끌고 공항 밖으로 향한다. 문을 열어젖히면 지금까지 맡아보지 못한 낯선 이국의 향이 코를 자극한다. 있는 힘껏 크게 숨을 들여 마시며 생각한다. 아! 내가 드디어 낯선 땅에 도착했구나...     



일본에 도착하면 맨 먼저 코끝에서 짭짤한 간장 냄새가 느껴진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다. 아마 일본인들에게 영혼의 음식이 아닐까 추측되는 음식, 라멘 때문이 아닐까? 마트나 편의점에는 수 백 가지 라멘이 팔리고, 블록마다 한  두 개의 라멘집이 널려 있다. 큰 도시엔 전국의 유명 라멘집을 모아 놓은 라멘 스타디움, 라멘 도장, 라멘 공화국, 라면 박물관이 퍼져 있다. 일본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라멘 집에는 늘 손님들로 북적인다. 일본 사람들은 혈중 라멘 농도가 일정 수준 이하가 되면 큰일이라도 나는 사람들처럼 라멘이 일상화되어 있는 곳이 일본이다. 라멘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사람들이 사는 열도에는 짭짤한 그 간장 냄새가 배어 있는 듯하다.     



반면, 중화권 나라에 딱 도착하면 진한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찌른다. 흔히들 "중국향"이라 부르는 그 냄새는 똑같이 고수를 즐겨 먹는 지역,  동남아시아 특유의 스파이시한 냄새와는 또 다른 향이다. 꼭 중화권이 아니어도 세계 어디에나 있는 그 지역의 차이나타운에 가면 맡을 수 있는 냄새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무슨 음식을 먹든, 어딜 가든 그 냄새가 배어 있다. 현지의 한국 음식점에 가서 한국 브랜드의 라면을 시켰는데 그 “중국향”이 나서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토핑으로 올려놓은 중국 햄 조각에서 배어 나온 향이 그 라면 전체를 지배한 것이다. 처음에는 무척 적응하기 힘들었던 특유의 “중국향“. 하지만 이제 어디서든 그 냄새를 맡으면 중국 생활 시절을 자동으로 떠올리게 하는 '기억 소환 스위치'가 되었다.     


음식 냄새가 나는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흙냄새가 진하게 나는 나라도 있다. 대게는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등 저개발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좋게 보면 천혜의 자연이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도시에 시멘트나 아스팔트가 거리를 덮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향일 것이다. 그곳의 흙냄새는 평생을 도시에서 발붙이고 살아온 나에게는 편안함보다는 사실 낯선 향이다. 하지만 그 흙냄새 속에는 강인한 생명력과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 있다는 걸 코 끝으로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도시들은 어느 하나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짬뽕 냄새가 난다. 여기서 짬뽕은 중국음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섞인 것을 의미한다. 런던에 갔을 때, 처음에는 축축한 낙엽 냄새가 나나 싶었는데 또 진한 남성 향수 냄새가 훅 풍겼다. 하지만 냄새 끝에는 매콤한 카레 냄새로 마무리되었다. 괜히 런던을 인종의 용광로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게 아니었다. 파리에 갔을 때는 기본적으로 버터가 듬뿍 들어간 빵 냄새에 오래된 건물에서 풍기는 차갑고 눅진한 냄새가 더해졌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 향신료 냄새가 살짝 풍겼다. 그 마지막 냄새는 아마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보니 느껴지는 향일 것이다. 각양각색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내뿜는 체취들이 섞여 그런 향을 만들어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장기 해외 체류를 하고 인천공항 밖 공기를 마시는 순간, 내 코로 느껴지는 한국의 냄새는 꽃향기다. 한때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한국인들 몸에선 향기가 난다”는 여러 외국인들의 고백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는 것도 그 이유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마 다수의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섬유 유연제의 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항의 묵직한 문을 열고 나와 향긋한 꽃향기를 맡고서야 비로소 내가 무사히 한국에 왔구나를 느낀다.     


반면 어떤 외국 사람들은 한국에 도착하면 마늘 냄새가 난다고 한다. 한국인 한 사람이 1년에 소비하는 마늘의 양이 약 7kg가 넘는다고 하니 이 땅에 마늘 냄새가 배어 있는 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세계 평균은 0.9kg, 서양권에서 마늘 많이 먹기로 소문난 이탈리아가 약 1kg 수준이라고 하니 한국인의 마늘 사랑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의 피 속에는 라멘 국물이 흐르고, 한국인들의 피 속에는 마늘이 흐르기 때문일까? 이미 아무리 오래 해외에 있어도 내 코는 한국에 도착했을 때 마늘향은 느끼지 못하나 보다.      


분명 같은 땅인데도 어떤 사람은 꽃향기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를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마늘 냄새를 느끼는 게 바로 인간의 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떤 냄새든 그 안에는 역사, 문화,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있다는 사실이다. 다음번 공항에 도착해 밖을 나설 때는 또 어떤 냄새를 맡게 될지, 벌써부터 코가 근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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