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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변잡기

필요한 것은 반드시 온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by 호사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토크 콘서트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초대형 가수처럼 몇 날 며칠 공연하는 것도 아니고, 수만 명이 몰리는 큰 공연장도 아니다. 공연은 단 1회, 객석은 800석뿐. 이 자리를 차지하려면 아이돌 콘서트 못지않은 ‘피켓팅’을 뚫어야 했다. 손이 빠르지도 않고, 경쟁을 싫어하는 나는 애초에 티켓 오픈에 참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공연 소식은 그냥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공연이 일주일도 남지 않은 어느 날, 문득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매 사이트에 들어갔다. 결과는, 새하얀 눈밭. 좌석표는 하얗게 비어 있었고, 내 자리는 없었다. 예상한 대로였다. 이대로 포기할 내가 아니다. 없는 건 마음의 여유지, 시간의 여유가 아니니까.


시간 날 때마다 예매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새로고침, 새로고침, 또 새로고침. 그저 눈밭을 구경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오후 6시 무렵, 기적처럼 한 자리 떴다. 맨 뒷줄, 오른쪽 사이드 한 칸. 작가님들이 점처럼 보일 거리였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그 공간 안에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주저 없이 결제 버튼을 눌렀다. 운 좋게, 정말 운 좋게 취소표를 잡았다.


공연 당일, 제주도, 강원도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 팬들이 모였다. 비행기와 기차를 타고, 누군가는 긴 버스를 갈아타고 왔다. 두 시간 동안 우리는 함께 울고 웃었다. 서로의 사연을 나누고, 연주를 듣고, 조언을 구했다.


"인생은 기세다“, ”나대라", “자화자찬, 경거망동” 등등


팟캐스트 방송에서 수없이 들었던 말을 실시간으로 듣고 있으니, 살갗으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어지러운 머리를 쿵 치고 지나갔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쓸려 나갔다. 공연이 끝나고,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걸었다. 거리엔 라일락 향이 가득했다. 혼자 피식 웃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필요한 건 반드시 오는구나


요즘 지독하게 무기력했다. 출구 없는 미로를 걷는 것 같았다. 답답하게 막혀 있던 나날 속에서, 이번 공연은 내게 작은 문 하나를 열어줬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니?’ ‘징징대지 말고, 인생은 기세야. 일단 나대.’ 공연 속 말들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웃었다.


필요한 것은 반드시 온다. 하지만, 손 놓고 있으면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 나는 수십 번 새하얀 좌석표를 바라보면서도 돌아서지 않았다. 무한 새로고침을 반복하며 ‘존’중하고 ‘버’텼다. 결국 단 하나의 기적 같은 취소표를 손에 넣었다. 혹시나 싶어 시간 날때마다 공연 전날까지 예매 사이트를 들락거렸지만, 다시는 빈 좌석을 볼 수 없었다. 내가 잡은 표는 어쩌면 마지막 남은 막차였다. 필요한 것은 반드시 온다. 하지만 그건, 필요한 만큼 노력할 때 온다. 멈추지 말고, 계속 언저리를 맴돌고, 꾸준히 시도하고, 작은 펀치를 날려야 한다. 그리고 반대로, 떠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이제 내게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흘려보내고, 가볍게 안녕을 건네야 한다. 미련 대신, 환영할 준비를 시작할 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4월의 밤공기가 유독 달콤했다. 가방에 그 동네에서 유명한 즉석 떡볶이를 포장해 넣어 어깨는 묵직했지만,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오랜 숙제를 풀어낸 듯, 몸도 마음도 가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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