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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pr 17. 2018

나를 흥분케 한 홋카이도의 맛 - 하코다테의 3味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코다테를 택한 이유는?




홋카이도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한 부분은 하코다테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이다. 홍콩, 나폴리와 함께 세계 3대 야경으로 꼽힌다는 하코다테 야경. 그 사실만으로 야경 덕후의 흥분지수는 급상승했다. 하지만 일정도 길지 않았고, 더군다나 야경을 보려면 1박을 무조건 해야 한다는 치명적 약점이 존재한다. 가난한 여행자에게 하코다테는 경비와 일정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 그럼에도 하코다테행을 택한 이유는 오직 “여행에 그다음은 없다”는 내 여행의 모토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홋카이도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해 곧장 하코다테로 향했다.

      

#. 하코다테 아지사이(あじさい)의 시오라멘


본격 홋카이도 여행의 시작점, 하코다테! 일몰 전후 하코다테의 매력을 동시에 느끼기 위해 여유를 갖고 일몰 1시간 반 전에 하코다테야마 로프웨이를 타러 갔다. 이미 3월 중순이었음에도 여전히 눈이 가득 쌓인 하코다테는 아직 겨울왕국의 옷을 벗지 못하고 있었다. 현지인은 물론 중국인, 동남아인 단체관광객들과 치열한 어깨싸움을 하며 기다리기를 한참. 서서히 어둠이 내려앉자 하코다테는 황홀한 야경을 선물했다. 아직 겨울 칼바람이 쌩쌩한 산 위에서 1시간 반이 넘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야경을 기다리느라 꽁꽁 얼어버린 몸을 녹이기 위해 얼른 저녁을 먹기로 한다. 내가 찾아간 곳은 하코다테를 대표하는 음식점들을 모아 놓은 미식 구락부에 위치한 아지사이(あじさい) 분점. 80년 전통의 가게로 시오라멘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저녁식사 때가 살짝 지나서인지 드문 드문 빈자리가 보였지만 꾸준히 현지인들이 들고 났다. 나와 일행은 깊은 고민 하지도 않고 대표 메뉴라는 시오라멘으로 통일했다. 속도가 미덕인 일본 라멘, 주문하기 무섭게 라멘이 내 앞에 놓인다. 맑은 국물 안에 면이 가득 담겨 있고 달걀 반숙이 다소곳이 앉은 모양새. 하코다테 칼바람에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서둘러 국물부터 한입 마셨다. 내 입에서 “아~ 깔끔하다”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 잡내 없이 닭뼈와 돼지뼈로 맑게 끓여낸 육수는 감칠맛이 가득했다. 면 또한 퍼지지도 꼬들하지도 않게 적당한 익힘 수준이었고, 차슈 역시 군내가 없었다. 하코다테에 쌓여 있는 눈처럼 깨끗하고 맑은 아지사이의 시오라멘은 내가 가지고 있던 일본 라멘에 대한 편견을 깨 주었다. 그동안 일본 라멘 하면 주로 뽀얀 돼지 육수에 된장으로 맛을 낸 진한 돈코츠 라멘을 먹어왔다. 그래서 라멘을 먹으면 기름지고,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아지사이의 시오라멘을 먹고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일본 라멘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하게 된 의미 있는 식사였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다시 눈이 쌓인 하코다테 거리를 걸었다.     



#. 하코다테 아침 시장 키쿠요 식당(きくよ食堂)의 카이센동



비린내에 취약한 나는 생선, 해산물을 날것으로 먹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초밥의 천국 일본에 와도 늘 계란 초밥, 새우 초밥 등으로 그 즐거움을 대신했다. 하지만 이번 홋카이도 여행엔 아예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날음식을 먹어야겠다 “ 계획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하코다테 아침 시장의 카이센동(해산물 덮밥)을 꼭 먹고 싶었다. 그래서 숙소 또한 굳이 아침 시장 근처로 잡았다. 결전의 아침, 7시 땡 되자마자 호텔을 나서 목표했던 카이센동 식당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 날벼락? 문이 닫혀 있다. 나중에 알았지만 성수기를 지난 시점이라 별 예고 없이도 문이 닫혀 있는 가게들이 있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얼른 대안을 찾아야 했다. 이제 막 문을 열기 시작한 시장과 식당가를 둘러보다, 허름해 보이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유명인인 듯한 사람들의 사인이 걸려 있는 곳. 키쿠요 식당(きくよ食堂). 가리비와 연어알, 그리고 성게알이 넉넉히 들어간 구성으로 주문했다. 영롱한 자태의 카이센동은 금세 내 곁으로 왔다. 가리비 위에만 간장을 뿌려 먹으라는 친절한 점원분의 코멘트 그대로 시행했다. 윤기 자르르 흐르는 흰쌀밥 위에 탱탱한 가리비를 올려 한입 크게 맛을 보았다. 쌀이 지닌 땅의 단맛과 가리비가 품은 바다의 단맛이 어우러져 입 안 가득 꿀이 흐른다. 가리비가 안겨준 황홀경에 취해 내적 댄스를 추며 2차 공습을 감행한다. 패기 넘치게 황금빛 성게알을 다시 한입 가득 떠 넣었다. 오물오물 씹다 보니 입안에 태평양 바다를 그 작은 성게알 안에 응축한 듯 진한 바다 맛이 느껴졌다. 보석처럼 알알이 박힌 연어알은 입 안에서 불꽃놀이를 하듯 톡톡 터지며 신나는 맛의 축제가 열렸음을 알렸다. 정신없이 하코다테의 해산물 파티에 취해 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밥 한 톨 없는 빈그릇이 덩그라니 남아 있다. 백 마디 말보다 말끔하게 비워진 한 그릇은 손님과 셰프, 서로에게 최고의 인사가 아닐까?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오며 생각했다. 야경이 아니더라도 하코다테를 다시 찾을 이유가 생겼다. 오직 카이센동을 맛보기 위해.        



#. 하코다테 롯카테이(六花亭) 고료카쿠점


1박 2일의 짧은 하코다테 일정의 마지막 코스는 롯카테이 고료카쿠점에 가는 것이다.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디저트 전문점인 롯카테이(六花亭). 그중에서도 굳이 고료카쿠점을 가야 했던 이유는 순전히 뷰 때문이었다. 고료카쿠 공원은 5개 각이 돌출된 독특한 별 모양으로 지어진 성곽으로 ‘북극의 별’이라는 애칭이 붙어 있다. 특히 하코다테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타워가 있어 늘 관광객이 북적이는 하코다테의 랜드마크 중 하나다. 겨울에는 눈이, 봄에는 벚꽃이 가득한 이곳은 그 자체로 그림이 된다. 롯카테이 고료카쿠점에 가면 이 환상적인 뷰를 보며 달콤한 스위츠를 맛볼 수 있다기에 오픈 시간에 맞춰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린 난관을 맞이했다. 왜냐? 문을 찾을 수가 없어서. 구글맵 神이 가르쳐준 곳으로 갔는데 도무지 출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근처를 몇 바퀴 돌고서야 우린 알게 되었다. 나무 숲 뒤에 출입구가 있다는 사실을. 출입구를 잘 가꾼 나무들로 살짝 가려 놓았고 옆으로 돌아가야 롯카테이에 입성할 수 있었다. 어렵게 입장하니 널찍한 매장 안은 스위츠 천국이었다. 명성답게 고료카쿠 방향의 한쪽 면 전체가 시원스러운 통창이었다. 창밖으로는 거대한 액자 속 풍경화처럼, 고료카쿠의 설경이 펼쳐졌다. 다만, 창쪽이 케이크 쇼케이스와 계산대로 꾸며져 있어, 창밖의 설경을 보며 스위츠를 먹겠다는 나의 계획은 틀어졌다. 하지만 그 아쉬움은 숫자로 달랠 수 있었다. 케이크의 가격이 믿을 수 없는 가격으로 매겨져 있었다. 보통 200엔 후반에서 300엔 정도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고, 게다가 커피는 셀프지만 무제한 무료였다. 가격이 싸다고, 또 커피가 무료라고 해도 절대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맛과 서비스였다.  그야말로 가성비 최강의 스위츠 전문점이었다.


하코다테에서의 1박 2일. 짧아서 더 강렬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비용 때문에, 일정 때문에 하코다테를 갈지 말지 잠시지만 고민했었다. 하지만 다채로운 매력을 간직한 하코다테는 그 존재 자체로 나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었다.  하코다테를 떠나오는 기차 안, 창밖을 보니 언제 올지 모르는 “다음”을 위해 지금을 포기했던 어리석었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부끄러움에 살짝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기차 안에서 몇 번이고 작게 읊조렸다.   

  

언제 올지 모를 불투명한 내일 말고

선명한 오늘을 살자. 오늘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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