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감정의 첨가물은 사양합니다
오늘 점심은 오징어가 듬뿍 들어간 토마토 파스타였다. 냉동 새우가 있는 줄 알았는데, 냉장고에는 오징어뿐이라 꿩 대신 닭, 아니 새우 대신 오징어로 파스타를 만들었다.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편으로 썬 마늘을 넣고 볶아 마늘 기름을 낸 후, 양파와 버섯을 넣고 다시 볶는다. 재료들이 노릇해지면 오징어를 넣어 센 불에 익힌다. 반투명했던 오징어가 ‘열’ 받아 흰색으로 변하면 토마토퓌레를 넣고 볶다가 삶은 파스타 면을 넣는다. 파스타 면을 삶은 물로 농도를 조절한 후, 풍미를 더할 버터와 매콤함을 살릴 페페론치노, 후추를 넣어 마무리한다. 심심한 간은 소금으로 보충하고, 파슬리 가루로 색감을 더하면 완성이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남부 이탈리아 어딘가, 작은 바닷가 마을의 어부가 점심으로 먹을지도 모를(?) 분위기의 오징어 토마토 파스타. 그걸 한국 경기도 어딘가에 사는 내가 먹는다.
삶은 파스타 면에 시판 소스만 부으면 끝나는 쉬운 방법도 있다. 그럼에도 이 번거로운 과정을 택한 이유는, ‘질려서’다. 파스타가 먹고 싶어 마트 소스 코너에 섰던 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브랜드별로 다양한 포장, 종류도 수두룩한 파스타 소스들이 나를 유혹했다. 마음을 뒤흔드는 제품이 보여 병을 들고 원재료명을 확인한 순간, 먹고 싶은 마음이 짜게 식었다. 유화제, 가공치즈, 색소, 향미증진제, 합성 착향료 등등—난생처음 보는 난해한 이름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대기업 연구원 석박사님들이 최저의 비용으로 최고의 맛을 내기 위해 고심해 만든 '시판 소스'. 과학의 ‘ㄱ’도 모르는 나는 이 무시무시한 이름들 앞에서 겁이 났다. 결국, 토마토퓌레 하나를 집어 들었다. 포장지 뒷면에는 딱 두개가 적혀 있었다. 토마토(99.8%), 정제 소금(0.2%). 어떤 재료로, 어떤 맛이 날지 눈에 그려졌다. 상상이 됐다.
21세기 도시에서 살면서 가공식품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토마토소스와 토마토퓌레처럼 선택지가 있다면, 조금 번거롭더라도 퓌레를 택하는 편이다. 한때는 파스타 하면 고민도 없이 시판 소스를 찾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입맛은 변하고, 소화력은 떨어진다. 뭐든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던 입이 거부하는 게 생겼고, 속도 쉽게 불편해졌다. 토마토면 토마토지, 착색료에 향료, 감미료, 보존료까지 들어간 건 인공적인 맛과 향이 느껴져서 더부룩했다. 포장지를 보면 어김없이 첨가물이 가득했다. 반대로 먹고 나서 편안한 건, 원재료가 단순한 것들이었다.
사는 건 복잡하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수두룩하다. 그래서 적어도 먹는 것만큼은 심플하게 선택하려 한다. 음식을 그렇게 바꾸기 시작하니 속이 편했다. 그리고 단순하게 먹는 것처럼, 일도 관계도 생활 패턴도 단순해지려 노력 중이다. 마음이 편해지고 싶어서. 인내심도, 기력도 예전 같지 않으니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이기심, 질투, 분노, 원망, 불안, 실망, 두려움... 맛도, 모양도 다른 감정의 첨가물들이 삶에 스며들면 속이 부대끼고 생활이 망가진다. 복잡한 말은 이해되지 않고, 꼬인 마음을 풀어낼 에너지도 없다.
그래서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다. 마음이 내키면 가고, 불편하면 가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은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 일을 하면서 누구를 원망할 필요도 없고, 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으면서까지 얻고 싶은 것도 없다. 이제는 토마토퓌레 포장지에 적힌 짧은 원재료명처럼,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생각을 원재료 삼아 하루하루 나를 채운다.
재료 손질부터 만들기까지 30분은 족히 걸린 파스타 한 접시를 10분 안에 뚝딱 해치웠다. 시판 소스처럼 꽉 찬 맛은 없지만, 토마토퓌레를 베이스로 만든 내 파스타는 달지 않고, 짜지 않고, 심플한 토마토 맛이 풍부했다. 시판 소스 맛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심심하고 허전한 맛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입에는 충분했다. 남들 입맛에 맞추느라 아등바등하지 않고, 온전히 내 입에 맞춘 오징어 토마토 파스타 한 그릇으로 꽉 채운 점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