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누군가는 서툴게 해내고 있다
부모님을 모시고 집 근처 전철역 앞에 새로 생긴 칼국숫집에 갔다. 개업 화분 리본이 나풀거리는 입구를 지나자,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직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4인용 테이블 여섯 개로도 매장은 꽉 찰 만큼 아담했다. 오픈 주방 안쪽에서 반죽을 써는 주인장이 경쾌하게 인사하며 새로 온 손님을 반겼다.
황태 손칼국수 두 그릇, 비빔 칼국수 한 그릇을 주문하고 매장을 둘러봤다. 점심시간이 코앞이라 거의 만석이었고, 우리는 운 좋게 마지막 빈자리를 차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뜨끈한 황태칼국수와 새빨간 비빔 칼국수, 세 그릇이 우리 테이블에 도착했다. 천상의 맛은 아니었지만, 정성 가득한 맛이었다. 최소한 저렴한 재료로 요령을 피운 흔적은 없었다. 조미료 맛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비빔 칼국수 양념장은 시판 느낌이 없었다. 무려 다진 고기까지 들어간, 제법 개성 있는 맛이었다. 기분 좋게 세 그릇을 비우고 배를 두드리며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먹거리 장사를 해봤던 부모님의 입이 근질근질해진다.
“국물 맛을 더 진하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1인석이 더 있어야 회전이 빨라지지…”
“이 가격에 가게 유지가 되겠어?”
칼국수 세 그릇에 2만 원을 내면 거스름돈까지 준다. 역세권 상가 1층에서 이 가격에 장사하려면 회전율이 생명일 텐데, 테이블은 대부분 4인석이다. 혼자 온 손님은 눈치 보며 합석하는 모습도 보였다. 장사 경력이 긴 부모님 눈에만 보였던 건 아니었다. 돈 쓰는 걸 아까워하지 않았던 ‘먹짱’인 내 눈에도 충분히 보일 정도였다.
자연스레 지금껏 봐왔던 잘 되는 식당들이 떠올랐다. 이 칼국숫집 사장님이 이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식당 운영은 초보 티가 풀풀 났다. 테이블 배치는 불편해 보였고, 공간 대비 동선 효율도 떨어졌다. 시그니처 반찬은 배추 겉절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익은 김치와 단무지까지 나와 오히려 분산되는 느낌이었다. 서빙 직원과 주방의 소통도 아직 매끄럽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서는 주문이 누락되는 실수가 벌어졌다. 손발을 맞춰가는 초기 단계라 믿고 싶다. 마치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와 바다로 향하는 아기 거북이를 바라보는 마음처럼, 그 칼국숫집이 잘 되길 바라는 응원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유심히 가게 안을 살핀다.
"손님은 얼마나 있을까?"
"‘오픈빨’이 빠진 후에도 이 가게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시국에 어렵게 문을 열었을 텐데, 오래가면 좋겠다.”
이런 마음으로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낸다.
남의 부족함은 잘 보인다. 말하기도 쉽다. 하지만 그 자리에 내가 앉는 순간, 그 쉬운 말을 실행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진다. 타인의 눈에 잘 보이는 문제가, 정작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함부로 단정 짓기 전에 한 번쯤 그 자리의 무게를 상상해 보려고 노력한다. 뜨끈한 칼국수 한 그릇, 아르바이트생의 우물거리는 인사 한마디, 신입의 어색한 이메일 속에 얼마나 많은 서툼과 용기가 숨어 있는지 떠올린다. 지켜보는 건 쉽지만, 해내는 건 어렵다. 그걸 알기에, 오늘도 그 칼국숫집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실수와 시행착오가 결국 노련함으로 꽃피길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