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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변잡기

뭘 해도 칭찬해 주는 방

누군가의 '칭찬방'이 되고 싶은 마음

by 호사

유난히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었다. 다정하고 위트 넘치게 수업하던 요가 선생님이 5월까지만 수업한다는 소식 때문이었을까? 기분을 끌어올리려 요가 수업을 마치고, 밤공기를 가르며 6km를 달렸다. 평소엔 늦은 시간에 물 이외의 음료를 마시지 않는데, 그냥 집에 가긴 허전해 아이스 말차라테를, 그것도 두유로 바꿔 마셨다. 차가운 말차라테를 들이켜고도 볼의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찬물로 식혀 봤지만, 샤워 후에도 뻘건 볼은 그대로였다. 수분 크림을 얼굴에 두툼하게 바르고 머리를 말린 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홍보하는 섹션에서 어떤 방의 이름을 보고, 피식 웃음이 터졌다.


[ 뭘 해도 칭찬해 주는 방 ]


서로의 소비 내역을 공유하며 평가받고, 낭비를 감시하며, 때론 과소비를 유쾌하게 지적하는 ‘거지방’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다. 이 외에도 업계 사람끼리 수다를 떠는 '대나무숲', 유명인의 짤을 주고받는 '고독한 ○○방', 러닝이나 식단을 인증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증방' 등 다양한 오픈채팅방이 있다는 걸 뉴스를 통해 알게 됐다. 하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능숙하게 하지 못하는 편이라, 익명이라도 그런 방을 기웃거릴 깜냥이 없었다. 그래서 ‘뭘 해도 칭찬해 주는 방’이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게 됐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오픈채팅방. 그날 내게 필요했던 건, 어쩌면 '칭찬'이었을까? 차마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채팅방 이름을 보기만 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졌다. 사람들은 얼마나 칭찬에 목말라 있을까? 누군가의 수고와 성과를 칭찬할 여유를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비아냥과 조롱이 풍년인 세상에서, 칭찬이 귀해진 걸까? 웃기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씁쓸해지는 이름. 북적이는 [ 뭘 해도 칭찬해 주는 방 ]이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칭찬에 인색한 세상은, 그만큼 삶이 팍팍해졌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작은 칭찬 한마디에도 마음이 출렁인다. 누군가 “수고했어” 한마디만 건네도, 괜히 울컥할 때가 있다. 별것 아닌 말 같아도, 그 안엔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라는 다정한 인정을 담고 있으니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잘했다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내가 너무 잘 아니까.


며칠 후,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데스크 선생님이 커다란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떠나는 선생님을 위한 마지막 선물, 롤링 페이퍼였다. 펜을 들고 잠시 고민했다. 선생님과 함께한 1년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이 변했을까? 깊이 생각하지 않고, 쓱쓱 롤링 페이퍼를 채웠다.


“선생님! 다정하게 가르쳐주신 덕분에 요가의 재미를 한층 더 알게 됐어요. 언제나 건강하세요!”


요가의 재미를 알게 됐다는 건, 내가 선생님께 돌려드릴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다. 자격증이나 강사가 되기 위해 전문적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그저 취미로 ‘요가’를 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원동력은 ‘재미’니까. 자칫 지루하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요가에서 ‘즐거움’을 가르쳐주는 건, 고난도 아사나를 성공시키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선생님은 최선을 다해 가르쳐주셨고, 그 즐거움 덕분에 나는 요가를 한층 더 경쾌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날 롤링 페이퍼에 쓴 짧은 문장을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내 말 한 줄이 선생님께 작은 위로나 힘이 되었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 나도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조용히 말을 걸어볼 용기가 생겼다.

“그거참 잘했네.”

“그렇게 해줘서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오늘이 조금 더 괜찮았어요.”


그런 말들이 오가는 세상은 조금 덜 팍팍하지 않을까. 아주 작고 사소한 말 한마디로도 누군가의 하루가 포근해질 수 있다는 걸, 나 역시 ‘뭘 해도 칭찬해 주는 방’을 떠올리며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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