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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변잡기

삶은 달걀은 안 터지는데 나는 왜 자꾸 터질까?

평정심은 냉장고 밖에서 시작된다

by 호사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 식사 전, 삶은 달걀 1~2개와 함께 찐 채소 한 접시를 먹는다. 대책 없이 불어나는 군살을 어쩌지 못해 찾은 나름의 해결책이다. 미리 만들어 둔 들기름을 넣은 오리엔탈 드레싱을 곁들이거나, 이것도 없으면 그냥 올리브유에 소금, 후추만 쳐서 먹는다. 덕분에 일주일에 한두 번, 대량으로 양배추, 당근, 브로콜리, 버섯 등 채소를 다듬어 찌고 달걀을 삶는다.


꼬박꼬박 달걀을 삶다 보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곤 했다. 삶는 동안 깨진 틈 사이로 흰자가 삐져나와 울퉁불퉁한 못생긴 달걀이 되기 일쑤였다. 매끈 탱탱한 달걀을 먹고 싶어 인터넷에서 달걀 잘 삶는 법을 뒤졌다. 소금이나 식초를 넣는 등 여러 방법이 있었지만 내가 정착한 방법은 아래와 같다.


1. 달걀을 냉장고에서 꺼내 실온에 30분 이상 둔다.

2. 찬물에 넣고 끓이기 시작해 물이 끓을 때부터 카운트해 7분간 삶는다.

3. 삶은 달걀을 바로 찬물에 담가 뜨거운 기운을 빼고 껍질을 벗기면 끝.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겉은 매끈하고, 속은 촉촉한 삶은 달걀을 만나게 됐다. 한 번에 10개 내외의 달걀을 삶아 밀폐용기에 넣어 둔다. 식사 전, 들불처럼 번지는 미친 식욕을 잠재우기 위해 매끈하게 삶은 달걀과 찐 채소부터 먹는다.


방법을 터득하기 전, 울퉁불퉁한 달걀을 마주했을 때 궁금했다. 왜 달걀이 매끈하게 삶아지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달걀은 개복치 급으로 온도에 민감하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달걀은 속이 차갑고 껍질은 얇고 단단한 상태다. 이걸 끓는 물이나 뜨거운 물에 바로 넣으면 달걀 속 공기주머니가 팽창하면서 압력이 생겨 "펑!" 하고 껍질이 터지기 쉽다. 그래서 달걀을 실온에 두면 품고 있던 찬 기운이 서서히 빠진다. 실온에 두고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껍질 안팎의 온도차가 줄어들어 갑작스러운 팽창을 막아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가 생기면 ‘펑!’하고 터지는 달걀처럼 사람의 멘털도 터진다. 나도 그랬다. 예고 없이 닥친 변화들 앞에서 멘털이 터져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차가운 말 한마디에 무너졌고, 뜨거운 상황에 던져졌을 때는 껍질도 못 지킨 채 터져버렸다. 어떤 날은 감정이 넘쳐흘렀고, 어떤 날은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고 멍해진 날들 속에서 내가 배운 건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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