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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May 25. 2018

엄마와 스마트폰

만 65세 나이에 첫 스마트폰을 갖게 된 엄마 관찰기

  



엄마는 요즘 스마트 폰에 푹 빠져 있다. 다 늙어서 무슨 스마트폰이냐고 비싼 거 사줘도 쓰지 못하니까 한사코 필요 없다던 엄마였다. 하지만 주변에 하나 둘 스마트폰을 쓰는 게 당연해지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인 엄마의 언니, 즉 이모도 능숙하게 스마트폰을 쓰시는 모습에 좀 부러우셨나 보다. 선명하게 찍히는 사진, 카카오톡, 트로트가 나오는 유튜브 동영상 등등이 엄마의 심경변화를 일으킨 촉매제였다. 올해 초 동남아 여행을 함께 갈 때, 사진을 핑계 삼아 엄마를 이끌고 핸드폰 매장에 가서 스마트폰으로 바꾸었다. 요즘은 대여섯 살 유치원생도 가지고 다닌다는 그 스마트폰을 엄마는 만 65세 나이에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휴대전화를 바꾼 지 3일 만에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여행지에서 엄마의 스마트폰은 주로 카메라 대용품으로 활약했다. 사진을 찍는 방법은 이전의 2G 폰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숙소의 와이파이를 이용해 한국의 뉴스를 보는 것도 무사히 해냈다. 한국에 있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담은 사진과 인사를 카톡으로 보내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건강 어플로 하루 동안 얼마나 걸었는지, 체크하는 것도 신기해하셨다. 그렇게 엄마에게 스마트폰은 여행의 질을 한층 높여 준 신문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에 돌아오면서부터였다. 엄마에게 스마트폰은 2G 폰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이었다. 터치도 익숙하지 않았고, 복잡한 기능에 머리가 꽤나 아프셨나 보다. 전화번호 저장, 받은 사진(이나 동영상) 전달하기, 화면 캡처 등등 젊은이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엄마의 머릿속에서는 매일매일 제로 세팅되고 있었다.     

엄마를 스마트폰의 세계로 초대한 사람은 나다. 그래서 더 책임감을 갖고 성심껏 1:1 과외를 했고, 엄마도 열심히 따라오셨다. 하지만 내 스마트 폰과 기종이 달라 가르쳐 드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가족끼리 뭔가를 배우고 가르치는 자체에는 참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마치 가족끼리 운전연수를 하지 않고, 형제ㆍ자매ㆍ남매끼리 과외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방금 가르쳐 드렸는데 돌아서면 또 똑같은 걸 물어보신다. 당신 스스로도 머쓱했는지 “내가 치매가 오나보다”라고 미안해하는 엄마를 보는 내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다. 더듬더듬 스마트폰을 배워가는 엄마를 보며 많은 감정들이 몰려왔다. 슬프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고, 무섭기도 했다.   

  

우리 4남매를 키우면서 엄마는 자식들의 수없이 똑같은 질문을 얼마나 많이 들어왔을까? 근데 난 고작 몇 번, 엄마의 반복된 질문에 벌컥 화를 냈을까? 예민한 스마트폰은 엄마의 투박한 손길을 자꾸만 거부했다. 젊은이들의 야들야들한 손과 달리 굳은살 가득한 엄마의 손은 터치가 잘 먹히지 않았다. 2G 폰을 쓸 때처럼 자꾸만 꾸욱 눌렀다. 엄마의 손가락을 잡고 터치부터 차근차근 시작했다. 자식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엄마의 마음이 이랬을까? 생각하니 목구멍 안쪽이 아릿했다.     


엄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고로 약은 약사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서 나도 스마트폰 전문가에게 교육을 맡기기로 했다. 동네 도서관에서 새롭게 진행하는 <어르신을 위한 스마트폰 강좌> 개설 소식을 듣고, 이거다 싶어 재빨리 수강 신청을 했다. 매주 목요일 두 시간씩 엄마는 도서관에 가서 스마트폰을 배웠다. 어느새 3개월간 이어진 수업의 종강이 코 앞에 다가왔다.     


그 좋아하는 일일드라마도 보는 둥 마는 둥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엄마에게 물었다.   

  

“스마트폰 강좌는 어때? 다 끝나가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엄마의 동공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일일학습지 잘하고 있지?”라고 묻는 엄마의 질문을 받은 코흘리개 시절의 내 표정이 아마 저랬을 것이다.     


“일 때문에 몇 번 빠지기 시작하니까 따라잡기 힘들 만큼 격차가 벌어졌어.

가도 잘 모르겠더라고... 남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바보 같아  

  

엄마의 예상치 못한 고해성사에 픽하고 웃음이 났다. 학창 시절 빠듯한 집안 살림에 선행학습을 위한 학원 따위는 꿈도 못 꿨다. 그 기분이 어떤 건지 나도 확실히 안다.     


“엄마 재미없으면 가지 마! 스트레스받으면서까지 할 필요 없어.

그리고 엄마가 왜 바보야? 그럼 나 바보 딸내미야?”    


엄마도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렇게 엄마만을 위한 24시간 스마트폰 무료 상담 콜센터가 재 오픈을 했다. 물론 그 콜센터의 유일한 소장겸 상담원은 나다.


더디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하는 엄마의 스마트폰 실력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밀려들었다. 나중에 엄마 나이쯤 된 미래의 나에게는 누가 이런 신문물을 가르쳐 줄까? 자식도 없는 나는 누구에게 신문물을 배워야 할까? 잠시 눈앞이 캄캄했다. 이제 지갑으로 키운 조카들(둘째 언니의 9세 딸, 6세 아들)이 해줄까? 아니 기대를 말자. 지 부모들한테나 잘하면 다행이다. 나이 들어 신문물을 배우자고 자식을 낳는 멍청한 부모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냥 알면야 편하겠지만 몰라도 그 나이까지 사는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세상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지옥이 되기도, 하고 천국이 되기도 한다. 난 적당히 모르는 행복한 천국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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