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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순유 Aug 21. 2021

가깝고 좋은데 '안 비싼' 골프장은 없다

골프장을 고르는 저마다의 기준

"값싸고 품질 좋은 화장지 왔어요!"

어릴 때 동네를 돌던 트럭의 스피커에서 이런 말이 나오면 엄마는 '값싸고 품질 좋은 게 어딨나, 그런 거 있으면 다 샀지.'라고 하셨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 밖에서 밥 먹을 일이 많아졌을 때에도 엄마는 '뭐 먹을까 고민스러울 때는 그 음식점에서 적당히 비싼 걸로 먹어.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가격을 그리 매겼겠지.'

장사라고는 전혀 해본 적 없는 우리 집의 일이니 이건 정석은 아니겠지만 친구들이 비빔밥을 먹을 때 나는 500원, 1000원을 더 내고 전주비빔밥이나 돌솥비빔밥을 먹었고, 설렁탕을 먹으러 가서도 도가니탕을 먹곤 하느라 먹는 데 돈을 꽤 많이 쓴 편이었다.(지금은...... 가장 기본 메뉴가 맛있어야 진짜 맛있는 집이라는 생각으로 황태 콩나물국밥보다는 그냥 콩나물국밥을, 시럽과 휘핑이 듬뿍 들어간 커피보다는 원두의 맛이 제일 잘 느껴지는 뜨.아.를 선호하는 편)


친구들과의 두 번째 라운딩을 계획하는 중이었다. 처음에야 내가 뭘 아나, 날짜랑 시간만 정하고 친구들이 정해주는 대로만 하는 것도 버거웠을 뿐. 그런데 두 번째, 세 번째까지 계속 소극적으로 의지하는 건 민폐라는 생각에 나도 같이 알아보려는 노력을 했다. 날짜를 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나를 제외하고는 필드에 자주 나가는 친구들이어서 그 날짜들을 빼고 나면 오케이. 문제는 어디를 가느냐였다. 골프 세계에 입문한 지 100일이 된 나는 옴마나! 전국에 골프장이 이렇게나 많았나? 운전하고 오가면서 보았던 이정표의 CC들을 내가 검색하고 있다니! 9H와 18H의 차이, 회원제와 퍼블릭의 차이, 노캐디와 무인 카트의 의미 등...... 처음으로 접하는 세계에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날짜를 결정하는 것보다 골프장을 선택하는 건 쉽지 않았다. 다들 저마다의 이유도 분명했다.

우선 나는 만사 오케이였다. 내가 지금 이것저것 가릴 땐가, 이제 똑딱이 면하고 첫 라운딩 마친 병아리를 귀찮아하지 않고 같이 나가준다는데 그저 감사할 뿐. 다만 나는 오후에 출근을 해야 하므로 마무리까지 다 하고 점심을 먹는 것까지 마쳤을 때(또는 점심 식사를 생략한다 해도) 아무리 늦어도 1시 30분에는 출발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비게이션을 검색해 골프장에서 직장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날짜와 시간까지 변경해가며 철저히 조사했다. 한여름이라 새벽 티오프가 좋기도 했고, 1시 이전에 라운딩을 마치는 건 그리 어려운 조건은 아니었다.


친구는 너무 이른 새벽은 힘들다고 했다. 새벽에 기상하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그런 날은 잠들지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 하다 보니 거의 헤롱헤롱 한 상태로 나오게 되더라며 새벽보다는 적당한 오전 시간대의 티오프를 원했다.(사실 이 얘기를 듣고 무척 미안했다. 나와 첫 라운딩을 잡을 때는 그런 얘기를 하나도 듣지 못했기에 친구가 나름의 큰 배려를 해준 것임에 새삼 고마웠다. 나를 위해 첫 라운딩을 잡아준 날 우리는 7시 티오프였는데......) 겨울철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골린이의 얄팍한 경험에 의하면, 여름 시즌의 골프장들은 이르면 5 시대부터 예약 가능한 티오프 시간대가 줄지어 있었지만 그림의 떡 보듯 패스.


다른 친구는 너무 비싼 골프장은 빼자고 했다.  번만 나가는 것도 아니고  달에  번씩 나가는데 매번 명문 골프장만 다닐 수는 없다며  그래도 코로나 이후로 그린피 너무 많이 올라 부담스럽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보통의 골프장의 라운딩 비용이 어느 정도 드는지도 코로나 이전의 그린피가 어느 정도였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또한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였다. 나야 이제  시작해서     나가는 입장이나 이게  달에 두서너대여섯...... 번이 잡히기 시작하면  팔아 골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수도권에서 조금 멀어지면 그린피 저렴한 곳들도 많으니  찾아보자고 했다. 오케이.


또 다른 한 친구는 캐디는 꼭 있어야 하고 잔디 상태도 괜찮아야 하며 너무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유도 분명했다. 캐디가 있어야 앞팀 뒷팀 간격을 파악해 안전하게 칠 수 있고 사람을 너무 많이 받는 골프장은 그린 보수할 틈이 없어서 잔디 상태가 엉망이며 거리가 멀면 오가는데 쓰는 기름값이랑 시간이 결국은 그린피랑 맞먹는다는 얘기였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뒷팀 골프공에 맞아 다친 사람 이야기와 오후 시간대에 차가 밀리기 시작하면 집에 돌아오는 시간을 예상할 수가 없으니 적당히 가까운 곳에 적당한 비용을 감수하고 잡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이 또한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아니 뭐, 내가 줏대가 없거나 팔랑귀 거나 해서는 아닌데...... 이렇게나 분명한 기준과 이유를 듣고 나니 '골프를 하면 똑똑해지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많은 톡이 오가는 가운데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나는 '이 정도면 못 잡는 거 아닌가? 교집합이 하나도 없구먼!' 하는 생각에 회의적이었다가 '이만하면 포기하거나 싸움날 만도 한데 참 평화롭군!'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피식 웃기도 했다.


"아직 날짜가 많이 남았으니까 일단 카카오 골프 예약으로 예약해보다가 취소가능 일자까지 계속 지켜보자." 즐겁고 평화로운 노년을 꿈꾸는 현명한 친구가 아름답게 마무리를 지었고, "그래 이번에는 우리가 처음 같이 나가는 라운딩이니까 나도 최대한 맞출게." 대쪽 같은 친구가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조율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에게 큰 가르침을 준 한 마디는 "가깝고 좋은데 싼 골프장은 없어. 다들 하나씩은 포기해야 골프장을 잡지. 한 번은 이렇게도 가고, 한 번은 저렇게도 가고. 가깝고 좋으면 비싼 거야." 15년 넘게 알고 지낸 이 친구가 점점 천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적어둬야지.


가깝고 좋으면 비싼 거야. 가깝고 좋은데 싼 곳은 없어.


골프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재밌었다. 어떤 문제 앞에 놓였을  저마다 선택을 하는 기준이 달랐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 그리고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적당히 맞춰주는 사람'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좋고 싫음을 분명히 하는 사람,  생각을 분명히 밝힐  있는 사람' 함께 하는 작업이 훨씬  피곤하다는 것도 배웠다. 아마 자기주장 없이 '그래,  좋아. 너희들이 정하는 대로 따를게.'라고 했더라면 매번 이랬을 테니. 각자의 기준은 그저 다를 뿐이지 누구도 틀린  아니기에 조율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결국 끝까지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보다는  발짝 뒤로  하나씩을 양보할  비로소 가장 좋은 결론을 찾아낼  있다는 인생의 기본 진리도 새삼 깨달을  있는...... 사람이 보이는 골프. 이거 너무 매력적인데?


(아, 그래서 우리 넷은요...... 7시 37분 티오프를 시작으로 중간에 그늘집에도 들렀다가 갈치 조림과 고등어 구이로 맛있게 점심을 먹고 안전하게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골프 #골린이

#어쩌다골프 #골프에진심입니다 #황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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