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기꺼이 불곰이 된 우리 엄마

by 행복한독서
화가 나면 얼굴이 불곰처럼 빨개지고 아침마다 집안을 들었다 놨다 하는 우리 엄마.
“쉿! 이건 비밀인데, 네 엄만 사람이 아니라 불곰이야, 진짜 불곰.”
아빠말대로, 엄마는 진짜 불곰인 걸까요?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허은미 글 / 김진화 그림 / 36쪽 / 13,000원 / 여유당



어느 순간 갑자기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른이 되고야 마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생선을 뼈째로 잘근잘근 씹어 삼키던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씹는 뼈가 목구멍을 넘어가며 상처를 낼 텐데도 어느새 저는 뼈까지 씹어 삼키는 잔인한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는 아이가 가족에 대한 글짓기를 하며 엄마 아빠가 결혼한 이유를 생각해보는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아빠 말에 따르면 엄마가 숲에서 길을 잃은 남자를 구해주고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인데, 아이들 눈에는 지치고 피곤한 일상을 보내는 엄마가 그저 화난 불곰으로 보입니다. 다시 엄마의 고함 소리에 벌떡 깨어나 후다닥 집을 나서면서 또 하루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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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불곰과 엄마의 포효하는 얼굴은 잔인한 느낌이 듭니다. 푸근한 이미지의 곰이나 늘 보던 엄마의 화난 얼굴보다 좀더 서늘하고 차갑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표정과 표정 사이에 이런 얼굴이 숨어있습니다. 아무리 가족을 사랑하는 엄마도 화가 날 땐 그저 한 명의 화난 인간일 뿐이지요. 스스로도 자신의 맨얼굴이 많이 당황스러울 거예요. 저 또한 엄마의 얼굴을 표현하는 데 고민이 많았습니다. 책 속 엄마는 결국 “그래, 내가 불곰이다”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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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이야기를 쓴 허은미 작가는 이 글을 본인 일상에서 퍼냈다고 합니다. 제 일상과 교차되어 공감 가는 부분도 많았는데, 제가 처음 그린 엄마 얼굴을 보고는 거부감이 많았습니다. “설마 이게 나라고? 아닐 거야”라고 하면서요. 다행히(?) 작가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독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녹색 어머니 깃발도 흔들고, 알림장에 사인도 해야 하고, 좋은 학원이 어디인지 귀를 쫑긋 세우고, 정보에 모른 척하며 열심히 첩보를 모읍니다. 그렇게 내내 마음 졸이다 곰 사냥꾼에게마저 핀잔만 듣습니다. 사냥꾼에게 잡혀오기 전엔 천연기념물 곰이었는데 지금은 멸종 위기의 불곰으로 종의 전환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흔한 가정사겠지요?


저는 그림을 그리며 저희 엄마를 많이 떠올렸습니다. 집에 아이가 넷이나 되어 늘 포효할 일이 많았고 사냥꾼은 늘 사냥만 다녔지요. 저는 엄마를 보며 나중에 커서 엄마처럼 될까봐 걱정했었는데, 그런 잔소리쟁이 엄마가 되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이렇게 서툰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엄마가 왜 좋을까?’ 이 질문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대답은 ‘그냥 있어줘서 좋다’였지요. 우리 아이들은 아직 이 마음을 모르겠지요? 모르는 게 당연하고 그저 철없이 자라는 아이들이 고마울 뿐입니다.


아이 등하굣길에 만나는 엄마들이 참 반갑고 의지가 됩니다. 이런 전우애가 또 있을까 하는 마음도 들고요. 매일 아침 우리네 엄마들이 잔소리를 우아하게는 못하더라도 그녀들이 자기 배역에 충실한 거라 생각하면 참 많은 것들이 이해가 갑니다. 아이들이 언젠가 이 집을 나가 세상에서 좋은 사람으로 커나갈 기대감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성장합니다. ‘어른이 되어야지’ 해서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되어야지’ 해서 엄마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나 자신이 되는 것이지요. 이 책이 너무 많은 변명을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지금 엄마 역할에 즐겁게 빠져있고 또 다른 분들에게도 이 즐거운 역할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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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화 작가는 오랫동안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습니다. 오늘도 뜸 들이는 시간이 대부분인 작업실에서 영감님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합니다. 『백만 년 동안 절대 말 안 해』 『고만녜』 『수학식당』 『대단한 단추들』 등 여러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18년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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