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을 배우는 시간
김현아 지음 / 344쪽 / 17,000원 / 창비
부평의 한적한 동네에서 12년을 마을 도서관으로 운영하다가 어찌어찌하여 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겼다. 2017년 6월의 일이다. 새롭게 둥지를 튼 공간이 재가 노인 복지와 방문 요양을 하는 곳이다 보니 도서관도 새롭게 콘셉트를 잡아야 했고 그것에 맞는 사업들을 벌여 서로의 시너지를 만들어야 했다. 함께하는 공간의 특색에 맞춰 노년을 위한, 노년을 준비하는 도서관을 운영하기로 했다. 2011년부터 도서관을 운영해왔지만 처음 시작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너무나도 낯설었지만 밤낮으로 생각하며 방향을 고민했다.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니 ‘노년’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곧 닥칠 바로 나 자신의 문제였다. 어느새 50대 중반에 닿아있었고 예비 노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이니 말이다. 나이 듦에 대해 인정하고 다가올 노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토론하며 하나씩 알아 나갔다. 도서관의 명칭도 달팽이미디어도서관에서 춤추는달팽이도서관으로 바꾸었다. 아프고 쓸쓸한 노년과 우울한 예비 노년의 이미지에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기쁘게 준비하자는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로부터 3년이 더 지났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슬기로운 노년생활’이라는 예비 노년 인문학 강좌를 매년 기획하며 ‘나이 듦’에 대해서, 여전히 불안하기만 한 ‘노년’에 대해서, 언젠가는 누구나 마주할 수밖에 없는 ‘죽음’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많아졌다. 그 과정에서 김현아 교수가 쓴 『죽음을 배우는 시간』을 만났다. ‘병원에서 알려주지 않는 슬기롭게 죽는 법’이라는 부제가 주는 끌림대로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30년을 의사로 살면서 준비 없이 맞이하는 죽음을 수없이 목격한 김현아 교수는 『죽음을 배우는 시간』을 통해서 늙음(노화)과 죽음은 치료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의료 기술이 발달된 현대 의학은 호흡이 멈추고 심장이 멈춰도 환자가 평화롭게 죽을 수 없는 의료 시스템으로 죽음을 통제한다. 장 기능이 상실되면 수액 요법으로, 신장 기능을 잃으면 투석으로, 호흡이 멈추면 인공호흡기로, 심장이 멈추면 심폐소생술과 인공심장 기계(에크모)로 생명을 연장한다. 이미 삶의 경계에서 죽음을 향해 가는 환자의 몸과 의식은 몸을 뚫고 들어온 의료 기계들에 의지해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삶을 강요당한다.
나는 가족력이 있는 당뇨병 환자다. 아직은 목숨을 위협할 정도의 합병증이 있는 건 아니지만 부모님 두 분 모두 당뇨병 합병증으로 돌아가셨다. 엄마는 응급실로 실려 가면서 두 차례의 심폐소생술이 있었다. 한 번의 심폐소생술 이후에 잠깐의 의식이 있었지만 얼마 되지 않아 심장이 다시 정지되었다. 이미 엄마는 세상의 끈을 놓은 상태인데도 두 번째 심폐소생술이 진행되었다. 엄마의 늑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엄마의 시신을 부여잡고 가족들에게 엄마 그만 힘들게 하고 이제라도 편히 보내드리자고 했다. 가족들의 동의하에 심폐소생술은 중단되었다. 여든이 조금 안 된 나이셨는데, 심장이 다시 뛴들 몸과 의식이 과연 온전하셨을까?
100세 시대라 한다. 그러나 나는 100세 시대가 반갑지만은 않다. 100세에도 온전하게 내 힘으로 숨 쉬고, 걷고,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을까? 무병장수는 없다. 일병장수도 없다. 100세가 아니라 70세만 넘어도 신체는 물론 몸 안의 뼈와 장기까지 노화되어 구석구석 안 쑤시고 안 아픈 곳이 없을 것이다. 정신은 또한 온전할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느려도 내 힘으로 땅을 디딜 수 있을 때이다. 또 내 의식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을 때이다.
김현아 교수의 말대로 병원의 소음과 전선, 튜브, 기계 장치로 연장하는 삶은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서명한다.
“Do Not Resuscitate!” 나는 내 심장이 멈추어도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 인위적인 생명 연장을 하지 않겠다. 참고로 나는 2018년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연명치료를 하지 않을 것에 대한 서명을 하였고, 쓸모 있는 장기가 남아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장기기증 신청서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남편과 딸에게 알렸다.
김현아 교수의 ‘엔딩노트’와 함께 책장을 덮으며 아직은 걷고, 뛰고, 숨 쉴 수 있는 일상에 감사한다.
최선미_인천 춤추는달팽이도서관 관장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0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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