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길 따라 제주 한 바퀴
고봉선 지음 / 제주의소리 엮음 / 480쪽 / 20,000원 / 담앤북스
공간의 규모는 작지만 동네책방의 역할은 무수히 많다. 마음의 위로와 치유를 얻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며, 마을과 사람을 연결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책을 매개로 지역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며,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출간하고, 우연히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온 한 손님이 책방지기가 추천한 책으로 인해 삶의 궤도를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느 날,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아담한 공간 안에는 책방지기만의 감각으로 서가를 구성하고 저마다의 독특한 분위기가 스며있었다. 대형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에 빠진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제주뿐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동네책방이 생겨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제주 여행길에 마을 곳곳에서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게 하는 작은 책방들이 있다. 이 책은 책과 사람이 만나는 동네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고봉선 시인을 통해 들을 수 있는 또 다른 제주 여행 질토래비(‘길 안내자’의 제주 말)이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제주에 터를 잡고 책을 통해 문화와 가치를 심는 책방지기와 제주 곳곳 마을 안에 녹아있는 책방의 이야기는 주민들이나 여행객들에게 특별함을 더해준다.
『책방길 따라 제주 한 바퀴』는 제주의 독립언론 『제주의 소리』에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라는 연재에 소개된 38곳의 책방 중 30곳의 책방을 추려 재구성했다. 안타깝게도, 故 고봉선 시인은 이 책을 준비하던 중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고봉선 시인은 제주를 단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제주 토박이이다. 연재하는 동안 시인은 제주도 곳곳에 위치한 동네책방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각 책방들이 가진 독특한 매력을 시인의 구수하고 정겨운 문체로 담아냈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제주시 : 제주국제공항에서 시작하는 책방 기행’으로 시작한다. 여기에서는 도평동, 애월읍, 한림읍과 같이 북부에서 서부권에 위치한 책방들을 소개했다. 그림책을 통해 엄마들의 모임 장소이자 아이들의 수업 공간으로 책방의 가능성을 넓혀나가는 책방, 책방지기가 직접 책을 읽어주는 책방,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키우며 지역과 사람들을 책을 통해 연결하고 싶어 인문학 교양서를 정성껏 큐레이션하는 책방 등 각자의 색을 간직한 책방들이 소개되었다.
2부 ‘서귀포시 : 산방산 품에 안긴 책방들’에서는 서귀포에 위치한 동네책방 9곳을 소개했다. 그림책작가와 카페지기 부부가 함께 중산간 시골마을에서 운영하는 그림책방, 제주 자연을 보존하기 위해 전시와 북클럽을 운영하는 책방, 제주 시인들의 시집뿐 아니라 산문집 등을 모아 지역을 연결하는 책방, 귤 밭 속에 숨은 아기자기한 음식과 관련된 소설과 에세이, 소품을 판매하는 책방, 고향 마을에 돌아가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채록하는 책방 등 서귀포 산방산을 중심으로 소담히 모여있는 제주를 사랑하는 책방지기들의 이야기를 소개해주었다.
3부 ‘제주시 : 우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공항으로’에서는 우도에서 제주공항 방면으로 가는 길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책방을 소개한다. 우도에서 만날 수 있는 책방, 잘못된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 하나로 책방을 운영해온 책방지기의 심지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방. 주민들과 함께 고전 읽기 모임을 꾸리거나 제주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책방, 시인이 운영하는 유명한 시집 책방, 독서모임 대신 한 권의 책을 몇 개월간 한 글자 한 글자 필사하는 모임을 만든 책방 등 그야말로 제주의 매력만큼이나 다채로운 책방들이 소개되었다.
고봉선 시인을 만난 건 3년 전 『제주의 소리』에 ‘고봉선의 마을 책방을 찾아書’ 취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였다. 그림책방 노란우산 광령점을 취재하러 방문하셨을 때가 잊히지 않는다. 우리의 이야기는 책방 앞에 있는 나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였다. 책방 취재를 오셔서는 나무와 화초 이야기만 실컷 하고는 다음에 인터뷰를 오겠다며 시간을 약속했다. 우리 아이들 이야기도 묻고, 옆지기의 안부를 물어봐 주시는 분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근처 항몽유적지 장수물에 있는 도롱뇽 서식지를 보존하기 위해 힘쓰며 도롱뇽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시곤 하셨다. 불쑥 들러 “선생님 밥 먹었어? 밥 먹으러 가자!” 하시고, 지나는 길에 화초를 심으라며 안겨주고 가셨다.
이처럼 고봉선 시인은 단순히 인터뷰로만 책방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 책방지기와 이야기하며 책방지기를 살피고 그 안에 숨은 이야기를 끌어내어 글을 지었다. 이 책의 문체가 더욱 정감 가는 이유일 것이다.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며 기쁨에 찬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며 소식을 전하던 시인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책과 글을 사랑하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나무와 화초를 사랑하고 본인이 나고 자란 고성마을을 사랑하고 제주를 사랑했던 고봉선 시인이 금방이라도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다.
이진_제주 그림책방 노란우산 대표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3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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