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독서 Jun 10. 2024

책 이야기 나누는 경험의 공간

출판인이 사랑하는 책방 - ‘아운트’

어린 시절, 이름조차 ‘신세기’문고였던 그 책방은 아파트 상가 한편에 있던 서너 평 정도 되는 작은 골방 같은 공간이었지만, 어린 나에게 ‘신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데 충분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사면이 책으로 꽉 찬 좁지만 넓은 곳이었던 책방은 한쪽 구석에 앉아 여러 책을 탐험할 수도 있는 신비한 공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책을 선물 받기도, 구입하기도 했다. 가끔 뭘 골라야 할지 고민할 때 주저 없이 주인장의 의견을 참고해 책을 사곤 했는데, 당시의 나로서는 꽤나 큰돈이었던 몇천 원을 선뜻 쓸 수 있었던 건 책방을 다니며 쌓았던 짧지만 오랜 인연, 그리고 주인장의 안목에 깊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추천은 종류와 장르에 상관없이 대부분 옳았다. 추억이라는 필터가 씌워져 있다 해도, 그 시절의 책방 주인장에게는 손님들에게 책을 적절히 추천하는 북큐레이터 자질이 어느 정도 요구되던 시대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유희와 향유의 한 공간이었던 책방도 시대의 변화를 맞아 함께 변화하기 시작했다. 작기도 넓기도 했던 ‘체험적’ 공간이었던 책방은 시공간을 넘어 (인터넷을 통해) 내 손안의 ‘무형적’ 공간으로 변했다. 그러면서 동네에서 책을 사기란 점점 더 힘들어졌다. 더 이상 직접 만지고 체험하며 구매하는 경험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 것이다. 어려서 책을 직접 사는 ‘맛’을 알았던 나는 이런 변화가 다소 섭섭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은 좋아하는 것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이런 섭섭한 마음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을 느끼길 원했고 가능하다면 이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곳이 책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각 지역에서 이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작은 책방이 다시 새싹이 돋듯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시 책방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었다. 책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책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책방은 다시 지역 네트워크의 한 장소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과 책이 모이니 책을 쓴 사람과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내가 동네책방 ‘아운트’를 찾은 이유도 그것이었다.

ⓒ아운트

서울 강동구에 있는 아운트(a.und)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지역 문화공간으로, 큰 도로변에 있는 것도 아닌 5호선 굽은다리역에서도 다소 거리가 있는 주택가 골목에 작은 입간판을 세워 놓고 운영해 가끔은 책방이 아닌 카페로도 오해를 받는 곳이다. 동네의 작은 공방이었던 이 공간은 책방으로 탈바꿈한 후, 출판 편집자를 큐레이터로 영입, 다양한 취향과 제안 등을 담은 책들을 선별해 판매하고 이와 연계해 각종 독서모임과 작가를 직접 초청해 독자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을 벌인다. 

옆 동네 주민이었던 내가 이곳을 알게 된 것은 SNS를 통해서였는데 좋아하던 작가의 북토크가 열린다는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방의 SNS에서 내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책에 대한 정보도 많이 얻었다. 그 덕분에 옆 동네 주민인 나조차 친근한 동네책방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런 점은 나에게 어린 시절 그 신세기문고를 떠올리게 한다. 신세기문고의 주인장의 추천이 대부분 옳았듯, 이곳의 추천도 믿음이 간다. 무언가 읽고 싶은 순간에는 아운트의 추천을 일단 살펴보고 책을 사게 된 것이다. 이른바 믿고 사는 아운트의 추천인 것. 책방의 많은 것이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운트를 발견하는 경험으로 나는 사실 언제나 책방을 꿈꾸고 있었고 지금도 기대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 비록 책방의 형태나 추천 방식이 그때 그 시절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으나 시대의 요구에 적절히 응하면서 변화했다고 생각하고 그 증거가 아운트라고 생각한다. 

이번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아운트로 놀러 가고 싶다. 그 시절의 내가 그랬듯이, 아이에게도 직접 책을 만지고 느끼고,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도 서슴없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 또한 아운트라는 책방이 우리 옆 동네에 있어서 가능한 이야기다.


• 주소 : 서울 강동구 양재대로126길 54 101호

• 운영 시간 : 금~일요일 13시~21시

• 인스타그램 : @a.und_ 


김경민_북디자이너, 『날마다 북디자인』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작가의 이전글 금낭화, 수국, 자생식물로 지은 옷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