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판판 포피포피 판판판
제레미 모로 글·그림 / 이나무 옮김 / 56쪽 / 15,000원 / 웅진주니어
“폭염에 무탈하시냐? 안녕하시냐?”와 같은 안부 인사가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어디 폭염뿐일까? 너무도 빈번한 홍수와 가뭄, 산불 등 기후 재난은 이제 무서운 속도로 이 지구를 잠식해 가고 있다.
『판판판 포피포피 판판판』은 기후위기로 아프고 점점 황폐해져 가는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보듬으며 살아야 할지, 꽤 웅숭깊은 질문을 던지는 그림책이다. 이야기는 어린 소년 워렌이 바람에 날아간 장난감 로켓을 찾으러 우연히 숲으로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워렌은 숲에서 난생처음 보는 동물을 만나는데 그 동물은 실은 상반신은 사람의 모습을, 하반신은 염소의 모습을 했다고 전해지는 자연을 대표하는 신, ‘판’.
판이 부는 피리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자연의 소리에 더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인간들, 이 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다. 판은 사람들이 아무도 자신의 연주를 듣지 않자, 스스로 멜로디를 잊어버리고는 급기야 화가 나서 피리를 삼켜버리게 된다. 이전처럼 자연을 아름답게 조율하는 신이 아닌, 분노에 찬 괴물로 변해버린다.
하지만 워렌이 숲의 모든 동물과 식물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오고 그곳에서 함께 판의 노래를 마음을 다해 기억해 내어 부르기 시작하자 은성한 변화가 일어난다. “판판판, 포피포피 판판판…….” 노래가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계속 끊이지 않고 숲의 모든 동물들을 통해 이어지자, 어느덧 판의 노래는 푸르른 숲이 되고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간 것이다. 그림책을 시종일관 관통하는 초록빛의 아우라에서 마치 판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노랫소리가 판의 귀에까지 가닿아 판의 가슴을 울리자 마침내 판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온 세상에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워렌의 방에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어린 새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 세상 밖으로 하나둘 나온다. 문득, 워렌이 울고 있는 할머니에게 왜 우느냐고 묻는 첫 장면이 떠오른다. 워렌의 질문에 할머니가 창밖에 펼쳐진 숲에 아득한 시선을 드리우며 말한 대답도.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판의 노래를 기억하고 귀 기울여야 할 충분한 이유를 그림책 『판판판 포피포피 판판판』은 이야기한다. 아름답지만 아주 간절한 목소리로.
윤정선_작가, 그림책 평론가, 『루아의 시간』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9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