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이 사랑하는 책방 - ‘책의기분’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가 ‘책 구경’이다. 출판사나 출판 종사자들의 계정도 자주 보지만 동네책방 계정을 보는 걸 즐긴다. 책방들은 요즘 어떤 책들에 관심을 가지는지, 어떤 재미난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한데 현실적으로 모든 곳에 직접 가보기 어려우니 SNS를 통해서 소식을 접한다.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창 너머로 책방의 일상과 북큐레이션을 접하고 책과 함께 살아가는 다정하고 단단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건 큰 행운이다. 다만 이 또한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노동인 걸 알기에, 그저 ‘구경만 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 한다. 책방 피드에 올라오는 책들에 눈길이 가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책방으로 꼽아 두었다가 기회가 될 때 슬쩍 다녀온다. 방문 기념으로 책을 몇 권 사는 것은 상식이고 예의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책의기분’도 그렇게 다녀온 책방 중 한 곳이었다.
근처에 갈 일이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들른 책의기분은 인스타그램에서 본 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전체적인 공간은 내 예상보다 넓었고 피드에 소개된 책들이 정성스러운 손 글씨 안내문과 함께 서가를 채우고 있었다. 그림책이 중심인 공간은 아니지만 한 곁에 책방의 취향을 보여주는 그림책들이 보였다. 그중 내가 만든 그림책이 있는지 슬쩍 보았지만, 내 직업을 밝히며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날은 그냥 지나가다 들른 손님의 기분을 누리고 싶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 마음속에 내 자리가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좋아하는 공간이 생기면 거기에 내가 만든 책이 놓이기를 기대하게 된다. 책의기분에 다녀온 후로 나는 종종 그곳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만든 그림책 중에 책방과 어울릴 것 같은 책들을 소개했다. 부디 이 책을 좋아해 주길, 책방의 멋진 책들과 나란히 놓일 수 있길 바라면서.
이런 마음이 통했는지 책의기분에서는 몇몇 책들을 반갑게 맞아 주셨고, 그때마다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마음이 환해졌다. 이곳에서 오승민 작가의 『소원이 이루어질 거야』 원화 전시를 진행하게 되었을 때는 기쁘면서도 얼떨떨했다. 원화 전시는 주로 그림책을 익숙하게 대하는 공간에서 주로 진행되는데, 내가 알기로 책의기분은 그런 곳이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이곳에서 그림책 원화 전시가 열린 건 처음이었다. 원화 전시를 통해 책방을 이용하는 손님들은 물론 조순영 대표에게 『소원이 이루어질 거야』는 특별한 작품이 되었고 지난 9월에는 오승민 작가와의 만남이 진행되었다.
‘서울형책방’ 프로그램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 나는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친구와 함께 참가자로 참석했다. 그림책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과 그림책 이야기를 나눌 때면, 우리가 정성껏 만든 포근한 이불이 한 뼘 넓어져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까지 함께 덮는 기분이 들곤 하는데, 이날이 꼭 그랬다. 명절 연휴를 코앞에 둔 저녁, 적당히 가깝고 낯선 사람들이 모여 그림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동네책방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행사가 끝나기 전, 각자 이루고 싶은 ‘소원’을 한 가지씩 말하는데 조순영 대표님은 “88세 8월 8일까지 책방을 하고 싶다”고 했고, 나는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함께 빌었다.
어른의 삶이란 자유로운 것 같지만 한계가 많아서, 좋아하는 친구와도 자주 만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좋아하지만 자주 갈 수 없는 책방이 있을 때, 그곳에 책을 주문한다. 더 빠르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꼭 그곳을 통해서 받고 싶은 책들이 있다. 주문하는 책에는 책방에서 소개한 책도 있고, 내가 필요한 책도 있다. 가끔은 책방에서 준비한 블라인드 북도 주문한다. 어떤 책이 올지 몰라 두근두근하는데 내가 아는 책이면 알아서 반갑고 모르는 책이면 몰라서 반갑다.
책의기분에는 책방 대표가 추천하는 ‘기분의 책’이 있어 책방지기의 기분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주고받는 것은 책이지만, 마음이기도 하다.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일상이 단단해지는 일이다.
지난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어마어마한 소식을 접하고, 감탄과 희열 그리고 엄청난 위로를 느꼈다. 우리가 함께 지키고 싶은 세계가 틀리지 않았다는 인정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반가운 상황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이 놀라운 축제의 마당에 동네책방들이 소외되었기 때문이었다. 수상 소식에 환호하던 책방들이 작가의 책들을 공급받지 못해 지치고 실망하고 상처받는 모습을 인스타그램 피드를 통해 보면서 나도 같이 속상하고 괴로웠다.
하지만 계속 끔찍한 기분에 갇힐 수는 없는 일. 나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함께 기뻐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책의기분에 책을 주문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처럼 내 일상을 채울 책들이었다. 세상은 우리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지만 우리는 또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살아가야 하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함께 사랑하는 세계를 지켜가고 싶으니까.
처음 책방의 이름을 알았을 때는 ‘책에도 기분이 있다니’ 신기한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책으로 기분을 나누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이렇게 책으로 이어져 한 계절, 또 한 계절을 넘어간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책의기분을 마주하러 갈 것이다. 그날의 기분이 벌써 기다려진다.
주소 : 서울 성북구 돌곶이로9길 5-19 1층
운영 시간 : 화~토요일 14~19시(매주 일, 월 휴무)
인스타그램 : @booksmood_
위정은_키다리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