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장 할머니
안효림 글·그림 / 48쪽 / 17,000원 / 소원나무
어릴 적 할머니 댁에는 낡은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자개장이 있었다. 그 자개장은 보물 상자 같았다. 할머니는 자개장에서 귀한 간식 보따리를 꺼내 주시거나 꼬깃꼬깃 접힌 쌈짓돈을 용돈으로 건네주시곤 하셨다. 반짝이는 자개장에서 산과 하늘, 나무와 꽃 그리고 십장생 동물들이 살아 숨 쉬는 듯했다. 나는 방바닥에 누워서 자개장을 바라보며 “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하고 상상하곤 했다.
안효림 작가의 『자개장 할머니』는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재미있고 신나는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주인공 아이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된다. 집이 망해서 이사를 하면서도 엄마는 오래된 자개장을 버리지 않고 싣고 온다. 맞벌이를 하느라 바쁜 부모님 덕에 아이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친구들이 다니는 태권도장에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해서 속상하다. 어느 날, 화려한 자개 무늬 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자개 할머니가 아이 앞에 나타난다. 이토록 힙한 할머니라니! 할머니는 ‘빛을 잃지 않는 씨’가 있는 복숭아를 찾으러 함께 가자며 자개 나라로의 모험을 시작한다.
자개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다독이며, 스스로 복숭아나무를 찾도록 도와준다. 이 다정하고 따뜻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좋은 어른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자개장 할머니』는 아이 곁에 좋은 어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를 일깨워준다. 아이에게 복숭아씨는 힘들고 지칠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사랑과 지혜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필요하다.
새것을 선호하는 요즘, 오래되고 낡은 물건에 담긴 사랑과 기억은 그래서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바다에서 온 조개껍데기를 정성껏 다듬어 자개로 새기고 옻칠로 더한 자개장의 아름다움처럼,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성과 사랑 속에 담겨있다. 이 책은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지혜를 우리에게 선물해 준다.
핵가족 시대, 명절이나 특별한 날조차 온 가족이 모여도 각자 핸드폰에 빠져 소통이 줄어드는 요즘, 이 책을 여러 세대가 모여 함께 읽어보면 어떨까? 다가오는 연말연시, 손자와 손녀, 부모와 조부모가 함께 이 그림책을 읽으며 웃음꽃을 피우는 훈훈한 풍경을 상상해 본다. 벌써 따뜻한 미소가 번진다.
박은미_그림책 활동가, 『그림책 모임 잘하는 법』 공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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