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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이용자를 주목하는 작은도서관

by 행복한독서

얼마 전 충북에서는 북스타트 담당 사서들을 대상으로 한 직무 연수가 있었다. 현재 북스타트는 영유아에서 시니어까지 전세대를 아우르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급변하는 상황 안에서 사업을 진행하는 담당 사서들의 고민은 깊었다. 북스타트 담당 사서 스스로 충북 북스타트를 SWOT(강점, 약점, 기회, 위협) 분석하는 시간에 주목할 만한 것이 있었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가운데 붙어있는 ‘시니어’라고 쓰인 종이였다. 지금의 도서관에 있어서 시니어는 강점이자 약점이고, 위기이자 기회였던 것이다. 실제로 그렇다. 교통약자인 시니어들에게 작은도서관은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공기관이자 독서문화를 누릴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며, 이웃을 만나 외로움을 나누고, 함께 배움을 만들어가는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통상 시니어라 불리는 고령자는 65세 이상으로 말하지만, 시니어를 몇 살부터라고 명확히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요즘 많이 등장하는 관련 용어 중에는 신중년도 있는데, 이들은 ‘액티브 시니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일본액티브시니어협회의 정의에 따르면, 액티브 시니어란 65~75세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정년퇴직 후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고, 노인으로 취급하기에는 좀 이른 세대를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50대 중반부터를 ‘액티브 시니어’로 보는 분위기다. 이들은 작은도서관에서도 주요한 역할을 한다. 1990년대 말부터 적극적으로 작은도서관 운동을 이끌고, 작은도서관을 이용한 사람들이 어느새 신중년의 나이가 됐다. 작은도서관을 만든 사람들이 시니어가 된 것이다.


최근 출생률이 줄어들고, 영유아들의 어린이집 등원 연령이 낮아지고, 30~40대 일하는 양육자들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작은도서관을 이용하는 연령은 자연스럽게 50대 이상이 되고 있는데, 작은도서관 입장에서 시니어 당사자이기도 한 이들은 도서관의 중요한 인력이자 작은도서관의 문턱을 낮추는 역할도 한다. 먼저 시니어 이용자, 활동가가 있는 작은도서관을 어르신들은 좀더 편안하게 생각한다. 스마트폰, 키오스크, 도서관 회원 가입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시니어들은 종종 “나 좀 도와줘요!”라며 다급히 도움을 청하기 위해 작은도서관에 들어온다. 혹서기, 혹한기 쉼터로 운영되는 작은도서관도 많은데, 이것을 계기로 작은도서관과 친숙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 기회를 작은도서관은 놓치지 않는다. 시니어 이용자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조용히 살피고, 쉬운 것부터 부담스럽지 않게 책을 권한다. 그 이후에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안내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을 작은도서관 운영진들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어떤 성과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참여를 위해서는 이용자의 시간과 결정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참고 서비스와 독서 약자를 위한 서비스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작은도서관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니어 시기에 만난 새로운 세계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가원시니어도서관은 어르신 특화 작은도서관이다. 그동안 어르신들을 위해 여러 가지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했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뜨겁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진행된 뜨개질 강좌는 달랐다. 시니어들은 괜히 주눅만 들던 다른 강좌와는 달리, 뜨개 강좌는 왕년에 뜨개질 좀 했던 실력도 발휘할 수 있고 작품도 나와서 성취감도 높았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작은도서관은 강좌 이후에도 뜨개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동아리원 중에는 노인일자리지원사업으로 왔다가 작은도서관을 처음 알게 된 시니어들도 있었다,

동네6-뜨개질 강좌.png 가원시니어도서관 ‘뜨개질 강좌’

사실 이런 사례는 다른 작은도서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서울시 강동구에 위치한 작은도서관 웃는책에 새로 생긴 독서동아리 ‘글읽는소리’에 참여하는 어르신 중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매주 작은도서관에 모여 ‘박지원의 연암집’을 윤독한다. 이 중에는 작은도서관에서는 정말 만나기 어렵다는 60대 남성들도 있는데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작은도서관에 왔다가 인연이 되신 분들이다. 작은도서관 웃는책의 운영진들은 일하러 오신 어르신들에게 꾸준히 책모임에 참여하실 것을 권했고, 한 달에 한 번 이용자가 주최하는 ‘책번개’ 모임을 경험한 후에는 독서동아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한다. 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인들을 단순히 시간을 때우다가 가는 파견 인력이 아닌 우리 동네의 주민이자 도서관의 이용자로 인지하고, 함께 책 읽는 장으로 초대한 운영진의 태도가 만들어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강좌로 시작해서 시니어 커뮤니티로 소문이 나면서 확대된 사례도 있다. 전북 전주시 책마루어린이작은도서관에는 70대 이상으로 구성된 독서동아리 ‘겨자씨’가 있다. 겨자씨는 함께 그림책을 읽고 그림도 그리고 한 줄 글도 쓰며 함께 책 읽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데, 돌봄 노동자인 60대 시니어가 자신이 돌보는 할머니를 모시고 동아리를 찾기도 한다. 돌보는 자와 돌봄을 받는 자가 모두 행복하게 함께 배우고 나누는 작은도서관 독서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작은도서관은 이들을 위해 좋은 책을 골라 읽어드리고, 종이, 색연필 등을 준비해 드리고 열심히 응원을 보낸다. 또 시니어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널리 알리는 활동도 한다. 최근 들어 작은도서관에 많이 등장하는 시니어 활동들은 시니어만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에서 벗어나 30대부터 80대까지 함께 어우러지며 함께 책 읽고, 문화를 누리고, 독서동아리를 하는 추세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지면상 다 실을 수 없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사례는 늘어가고 있다.


우리 지역의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작은도서관을 찾는 어르신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부터 시니어 대상의 작은도서관 콘텐츠는 기획될 수 있다. 작은도서관이 만들어졌던 초창기, 시민들은 작은도서관에서 함께 책 읽고 아이를 키우며 소리 내어 책 읽어주는 문화를 만들고, 다양한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확대한 것처럼, 새로운 실험실로서 작은도서관이 시니어 대상의 다양한 활동을 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용자 중심의 기획과 서비스로 새로운 독서문화를 만들어온 작은도서관이라면 분명 가능할 것이다.


이은주_㈔어린이와 작은도서관협회 이사장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5년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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