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도 도둑이 있다.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by 싱그릿

싱가포르에 산다.

싱가포르에 산다고 하면, 공통되게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법이 엄격한 나라.

맞다. 싱가포르는 '벌금의 나라'라고 일컬을 정도로 도시 정화 캠페인과 질서유지가 엄격하다.

도로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다 적발되면 1000 SGD의 벌금이 부과된다.

한화로 약 100만 원 정도다.

(출처: 싱가포르-나무 위키)


하지만, 촘촘한 법의 감시망을 피해

길가에 버린 쓰레기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한다.

아무리 그래도 '벌금의 나라' 싱가포르에 살면서

도난 사건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전거 도난 사건


자전거를 좋아하는 아들은

여느 날처럼 자전거를 타고, 식당 앞에 주차를 했다.

자전거를 탈 들뜬 마음에 헐레벌떡 식사를 마치고 나선 아들은

이내 혼비백산한 표정으로 부리나케 들어왔다.

"자전거가 없어졌어..."

불과 15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놀란 아이를 애써 진정시키고, 황급히 주변을 나섰다.

그러나, 끝내 자전거는 못 찾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주변에 CCTV가 설치되어있었다는 점.

나는 보안실에 가서 도움을 청했다.


CCTV에는 범인이 자전거를 절도해가는 '그 순간'이 고스란히 녹화되고 있었다.

경비원은 친절했다.

어서 경찰서에 신고하라며,

자신이 도울 수 있는 일은 모두 돕겠다며 호의를 베풀었다.

'저.. 그럼 나 대신 신고 좀 해줄래요?'

'Can you..' 목구멍까지 나오려는 말을 간신히 삼켰다.

생존 영어만 겨우 구사하는데, 신고라니 아찔했다.


그래도 아들이 아끼는 자전거를 반드시 찾고야 말겠다는

오기 비슷한 모성애가 발동했다.

연거푸 심호흡을 하고,

싱가포르 경찰서 999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을 따라 심장이 요동쳤다.

자전거를 잃어버려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건지

짧은 영어실력으로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 두려워서 인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전화를 뚝 끊어버린다.

'앗?! 뭐지? 장난전화인 줄 알았나?!'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다른 경찰관이 전화를 받았고,

자초지종을 듣고는 여기는 'Emergency call'만 받는다며,

또다시 매몰차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도난사건은 그럼 어디에 신고해야 하지?

멘붕이 왔다.

그때, 친절한 경비원(싱가포리언)이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이번에도 친절하게

힐뷰는 Bukit Batok Police가 관할 경찰서라고

관할 경찰서 번호를 알려줬다.

'저.. 번호만 알려주지 말고 신고 좀 해주면 안 될까요?'

이번에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꾸역꾸역 삼켰다.


또다시, 신호가 가고 심장은 쿵쾅거렸다.


얼토당토 한 영어로 상황을 설명했다.

이번에는 경찰관이 전화를 끊지 않았다.

'이제야 제대로 번지수를 찾았군..'

신고 후, 15분이 지나자 경찰관 둘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렇게 무려 1시간이 넘게 진술을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무더운 오후였다.

적도의 이글이글 쏟아지는 태양을 피해 귀가하던 중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는 웬만해서 안 받는데, 느낌이 왔다.

자전거를 찾은 것이다.

경찰관 둘이 굵은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자전거를 직접 집 앞까지 배달해주고 홀연히 떠났다.


그때는 몰랐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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