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교시 도덕수업이 끝나자, 한 학생이 교단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그동안 수업을 들으면서 제가 선생님께 드리고 싶었던 질문들을 적어두었는데요. 그게.. 양이 너무 많아서요. 오늘 학교 끝나고 질문드려도 될까요?"
또래보다 의젓한 태도로 수업에 임하는 데다 글 쓰는 능력 역시 출중하여 눈여겨 보고 있던 학생이었기에 그의 제안이 더욱 반가웠다.
"그럼! 당연히 되지."
나는 교무실 한켠에 딸린 빈 방으로 학생을 데려갔다. 잡음이 끊이지 않는 교실과 교무실을 벗어나 드디어 단둘이 마주보게 되자, 그는 작은 수첩 하나를 꺼내 뒤적이기 시작했다.
"제가 선생님께 드릴 질문을 적은 수첩이에요."
기특한 마음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수업 내용과 관련된 질문이니, 아니면 수업 외적인 것과 관련된 질문이니?"
"수업과 관련된 질문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었던 질문들이에요."
"어떤 질문인데?"
"질문이 많은데요... 일단 첫 번째 질문을 드릴게요. 선생님은 생물이 사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냥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해서요."
"선생님이 네 질문을 듣고 나서 딱 떠오른 생각을 말하면 되는 거지?"
"네."
"샘은 생물이 사는 목적은 '살아있음', '생명' 그 자체를 위한 것 같아. 그런데 생물 중에서도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물을 구분하여 보면 다르게 말할 수 있을걸? 생물 중에서 특히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은 '행복'이라고 생각해.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물을 구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넌 어떻게 보니?"
"전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물이 구분되는 점을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살아가는 목적은 '번식'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얼마 전에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이에요.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물이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요?"
"고대 철학자들은 인간이 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다른 생물들과 구별된다고 보았어."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동물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이성이 있을 수 있고요."
"맞아, 그럴 수 있지. 철학과 관련된 주제는 사실 명확한 답을 내릴 순 없어.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주는 것이 이성이라고 보긴 했지만, 사실 너처럼 달리 볼 수도 있지. 샘이 네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줄 수 없고 단지 샘의 의견으로만 그칠 수 있는 생각들을 말할 수밖에 없는 건, 철학적 문제란 본래 답을 내릴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야."
학생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답을 내릴 수 없어요. 혼자 사색하고 철학에 대해 고민해도 명확한 답이 떠오르질 않는데, 이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했어요."
"그랬구나. 사실 이런 문제들은 답을 내리려고 노력하기보다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선생님, 그럼 '진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리가 존재한다고 보세요?"
"음, 선생님은 진리란 각 개인이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보물이라고 생각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숨겨진 보물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거고. 그리고 만약 이 진리란 게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경험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지혜라고 생각해."
"선생님, 사람들마다 진리라고 생각하는 게 다르다면, 나한테는 이게 진리고 저 사람한테는 저게 진리가 될 수 있는 거겠죠?"
"그렇지.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진리를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절대주의 입장과 진리가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상대주의 입장이 있어. 넌 어느 쪽이니?"
"저는 사람마다 진리에 대해 다르게 생각한다고 보지만, 사실 두 입장에는 순환성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OO이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구나. 사실 절대주의나 상대주의는 어느 한 개념만으로 설명되지 않아. 상대주의는 사람에 따라 진리가 다르다고 보기 때문에 저마다 내세우는 의견들이 모두 참이라고 보지. 근데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절대주의 역시 특정 사람이 내세우는 진리이기 때문에 참이 돼. 즉, 상대주의를 인정한다면 절대주의 역시 인정해야 한다는 모순이 생겨.
상대주의가 가지고 있는 위험성은, 사람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을 진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생기는 거야. 히틀러 역시 자신이 진리라고 믿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행동한 것이거든. 이 지점에서 상대주의의 폐해를 막기 위해 절대주의를 끌어들일 필요성이 생겨. 우리가 도덕시간에 배우는 보편적 가치가 상대주의에 절대적 요소를 어느 정도 끌어들이지. 보편적 가치 기억나? 보편적 가치는 오랜 기간 사람들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온 가치, 즉 어느 누구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가치야. 자유, 평등, 인권, 복지 같은 가치들은 어느 누구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잖아. 이렇게 보면, 절대주의나 상대주의 중 어느 한 입장에 치우치는 것보다는 두 입장을 모두 적절히 고려하는 편이 좋겠어."
"선생님, 방금 선생님께서 해주신 설명이 제가 이 다음에 선생님께 드리려고 했던 질문과 관련이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가치'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었거든요. 어떤 아이가 하루종일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을 때, 엄마는 아이의 시간이 가치 없이 사용되었다고 평가하지만, 사실 그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가치 없는 시간이 아니거든요. 사람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선생님, 그리고 또 여쭤보고 싶은 건요. 저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위가 이기성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착하게 사는 것, 도덕적으로 사는 것 역시 내가 그로 인해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이기심 때문에 하는 것 같거든요.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OO아, 지난번에도 너와 이야기를 나눈 주제이긴 하지만, 너가 말한 생각은 '윤리적 이기주의' 입장과 관련된 거란다. 윤리적 이기주의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이유가 순전히 이기심 때문이라고 보는 입장이야. 어떤 사람이 남을 돕는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면, 그 사람은 그러한 자기만족을 느끼기 위해 남을 돕는 것이지, 다른 사람 자체를 위해서 돕는 게 아니라는 거지."
"네, 제가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이런 쪽으로 생각하면, 사람에게 이타성이란 게 존재하는지 의문이에요. 모두가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 같거든요."
"다른 사람을 돕는 행위나 교통 규칙을 잘 지키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이러한 행동이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일까?"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위해서요."
"혹시 칸트나 공리주의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니? 칸트는 선한 행동을 하는 게 그 자체로 '의무'이기 때문이라고 보았어. 반대로 공리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보지."
"칸트가 말하는 '의무'는 누가 정하는 건가요?"
"칸트는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선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어. 이러한 선의지를 통해서 우리가 지켜야 할 의무를 저절로 알 수 있다고 보았지. 그런데 공리주의적 입장에서는 다르게 봐.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에게 이익이 된다고 여겨지는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의무가 된다고 보거든."
"아직 칸트의 입장이 잘 이해되지 않아요. 저는 공리주의적 입장에 가까운 것 같아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퇴근시간이 가까워졌다. 학생에게 제안했다.
"이제 선생님들 퇴근시간 됐다. 교무실 문 닫고 가셔야 할 것 같으니, 우리 카페로 자리를 옮기자."
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카페요?"하고 반문했으나, 기쁜 기색을 보였다. 학교 근처의 자그마한 카페로 그를 데려갔다.
"뭐 마실래?"
"전 안 마셔도 돼요."
"안 돼. 이런 데 왔으면 하나라도 마셔야지. 뭐 먹을래? 달달한 것 좋아해?"
"아니요."
"과일 주스 어때?"
"별로 안 좋아해요. 그냥 콜라 먹을게요."
쉽게 메뉴를 정하지 못하는 학생을 보고선 카페 사장님께서 메뉴를 제안해주셨다.
"복숭아 아이스티나 레몬 아이스티도 괜찮고, 콜라 같은 탄산 좋아하면 에이드 쪽에서 골라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오, OO아, 에이드 괜찮다. 이거 콜라처럼 탄산도 있어. 여기 중에서 골라봐. 의무야!"
"그럼 한라봉 에이드로 할게요. 저 이런 데를 안 와 봐서요..."
"오케! 한라봉 에이드 한 잔이랑 바닐라 라떼 한 잔 주세요."
학교 바깥으로 나오니 학생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학교나 학급 분위기, 앞으로 하고 싶은 일, 전공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 소소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 궁금한 게 또 있는데요. 저는 사랑이나 연애 감정, 성욕의 차이를 모르겠어요. 사랑과 성욕이 구분될 수 있긴 한가요?"
"그럼! 사랑과 성욕은 완전 구분되는 개념이야. 간단히 말하면, 성욕은 신체적인 개념이고 사랑은 정신적인 개념이야.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데 성욕이 없어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서 성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의미(생물학적 의미, 쾌락적 의미, 인격적 의미)와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랑(에로스, 필리아, 아가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은 새로 알게 된 용어를 혼잣말로 곱씹으며 기억하고 싶어 했다. 여러 두서 없는 이야기 끝에 마무리된 대화의 결론은 이렇다.
"OO아, 사랑이란 건 사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돼. 나 자신을 사랑하면 내 안에 사랑의 마일리지가 차곡차곡 쌓여. 이 마일리지가 쌓여서 넘쳐 흐를 만큼 많아졌을 때 비로소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줄 수 있는 거야. 자기 안에 없는 사랑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랑 마일리지를 빼앗아 올 때 문제가 생기는 거지.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면서 사랑 마일리지를 채워놓는 게 필요하겠지?"
바로 어제 나눈 대화이기에 어려움 없이 복기할 수 있었다. 이런 유형의 대화를 중학교 2학년 남학생과 나눌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학생이 자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풀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교사'라는 사회적 가면을 벗고선 나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너희 앞에 설 때마다 고민을 많이 해. 샘은 남자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처음이거든. 그래서 샘 말 한 마디에 너희가 상처받지 않을까, 잘못 행동하는 게 아닐까 고민을 많이 했어. 너희들 입장에서 샘을 보면 '애들 못 잡는 선생님'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샘이 화를 못 내는 사람이라서 화를 안 내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교사에게 '잡혀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야. 너희들이 아무리 말을 안 듣거나 말썽을 부려도 누구한테 '잡히는' 존재는 아니어야 하니까."
학생은 단호하면서도 따뜻하게 대답해 주었다.
"선생님, 애들은 선생님의 의견에 모두 동의할 거예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선생님의 수업 방식을 좋게 보고 있어요."
대화를 복기해 찬찬히 살펴보니, 학생이 질문을 하는 숨은 의도를 꿰뚫고 질문을 통해 학생의 이야기를 더 들으려고 노력하는 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유형의 대화를 통해, 철학적 명제를 깊이 이해하고 탐구하고자 하는 친구와는 비록 중학생일지라도 깊은 수준의 대화까지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대화를 통해 학생에게 배움에 대한 열의와 통찰력을 제공해주는 도덕교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배움을 지속하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