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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Feb 21. 2024

평범한 자들은 어떻게 악한 행동에 동참하게 되는가

도덕의 변성 - 밀그램과 아렌트

우리 학교에는 모든 선생님이 들어가기를 꺼려하는 '악명 높은' 학급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X반은 수업 방해의 정도가 심한 편이었다. 그 학급은 소위 '일진' 중에서도 우두머리 격에 속하는 A가 주름 잡고 있었고, A의 컨디션에 따라 학급 분위기가 좌지우지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컸다. A는 친구들이 수업을 방해하고선 선생님한테 지적받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는데, 그 때문인지 A의 신임을 받고 싶었던 조무래기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수업을 방해하려 들었다. 놀랍게도 A의 구미에 맞게 행동하는 학생들은 지극히 평범한 부류에 해당했고, 전년도에는 학급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었을 정도로 조용했던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A의 무리에 소속되길 원하면서 선생님들보다도 A의 권위를 높이 샀고, A가 하자는 행동이라면 어느 것이든 했다. 아이들이 주로 썼던 방법은 주로 괴상한 소리를 내거나 이상한 말투로 말하는 것,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드는 것 등이었고, A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소리내어 웃을 정도로 좋아했다. A가 좋아할수록 아이들의 이상 증상은 더욱 심해졌다.


전반적인 학급 분위기를 알기 전까지는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들만을 지적할 수밖에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업 내용을 설명하는 데만 집중하다 보면 아이들 간의 서열관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데, 해당 학급 분위기의 심각성을 느끼면서 주의 깊게 관찰하다 보니 A가 자신을 따르는 아이들에게 수업을 방해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는 손가락을 튕기는 동작 등으로 아이들의 이상 행동을 유도했고,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거나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면 할 때까지 신호를 보냈다. 마지못해 이상한 동작을 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당연히도 그리 좋지 않았다. A가 누리는 권력의 혜택을 받는 것이 만족스러웠던 아이들은 아무리 지도해도 나아질 기색을 보이지 않았고, 비굴해 보일지언정 A의 측근으로 남아있기를 선호했기 때문에 그의 부당한 요구에 응했다. 이 학급의 분위기는 내게 아이들 간의 서열관계나 권위, 복종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게 만들었고, 아직까지도 해결하기 힘든 '교육의 난제'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밀그램적 관점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대리자적 상태"에서 벗어나길 원치 않았던 것이다.




밀그램이 기획한 복종 실험은 단연 오늘날 가장 널리 회자되는 실험들 중 하나로, 권위에 대한 다소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1961년,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 1933-1984)은 "징벌에 의한 학습 효과"를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실험 참가자를 모집했고, 피험자들을 선생과 학생 두 집단으로 나눈 뒤 학생 역할의 피험자를 전기 충격 장치가 연결된 의자에 묶었다. 선생 역할을 맡은 자들은 학생 역할을 맡은 자들이 문제를 맞추지 못할 때마다 앞에 놓인 버튼을 눌러 전기 충격을 가해야 했는데, 주저하거나 저항하는 양상이 없진 않았어도 결국 참가자의 65%(40명 중 26명)가 사망의 위험이 있는 450V에 도달할 때까지 버튼을 눌렀다. 사실 본 실험은 징벌에 의한 학습 효과가 아니라 사람들이 권위에 어느 정도로 복종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홀로코스트와 같은 잔인한 행동에 가담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밀그램의 의문으로부터 비롯된 실험이었다. 전기 충격을 유발하는 장치는 가짜였고, 학생 역할을 맡아 의자에 묶인 피험자들도 미리 섭외된 연기자들이었다.



놀랍게도 우리는 평범한 개인이 실험자(권위자)의 명령에 어느 수준까지 복종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실험 결과는 예상치 못한 것일 뿐만 아니라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많은 피험자가 상당한 스트레스를 경험하였고 그 중 일부는 실험자에게 항의하였다는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그들 중 다수가 가장 높은 수준의 충격을 가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 밀그램, 『권위에 대한 복종』 (프랑스어판에서 번역)



밀그램은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출간한 『권위에 대한 복종』(1974)에서 "우리 연구의 주요한 발견은 권위의 명령에 거의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성인의 극단적인 성향"이라고 밝힌다. 밀그램의 실험은 권위자의 강요가 개입된 상황이 개인의 도덕성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냄으로써 도덕이 진정 인간이 지닌 내면적 특성인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실험을 통해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고의로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일종의 공통 감각에 가까운 견해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밀그램은 『권위에 대한 복종』 에서 자신의 실험 결과를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 개념과 연관짓는다. 즉, 밀그램은 "한나 아렌트가 공식화한 악의 평범성 개념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진실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으며", 상대방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던 사람들이 특별히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라 "피험자로서의 의무에 대한 생각이 도덕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피험자들은 비도덕적인 의도로 전기 충격을 가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피험자로서 약속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도덕적 이유를 빌어 전기 충격을 가했다고 볼 수 있다.


밀그램의 실험실 구조  / 자신이 평범한 공무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아이히만


밀그램의 실험에서 상대방에게 높은 강도의 전기 충격을 가한 사람들은 매우 평범한 부류의 사람들에 속했으나, 이들이 자발적으로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데 동참하게 된 이유는 자신이 이행하기로 계약한 실험을 끝까지 완수하는 것, 권위자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도덕적인 행위라는 판단에 따랐기 때문이다. 밀그램은 이와 같이 도덕적 행위의 의미 자체가 변성된 상태를 "대리자적 상태"(agentic state)라 불렀는데, 이는 즉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상황의 도덕성을 판단하고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가 요구하는 바를 대리 이행하는 것에만 몰두하게 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대리자 상태"에 빠진 대표적인 인물로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들어 유대인 학살을 기획하고 실행했던 아이히만이 거론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실제로 밀그램이 든 사례에도 해당한다. 밀그램식 실험에 따르면, 선생 역할을 맡았던 피험자 중 선생이 직접 학생의 몸을 만져 벌을 주는 경우에는 30퍼센트, 선생과 학생이 같은 방에 있을 경우에는 40퍼센트, 서로 다른 방에 있지만 목소리가 들릴 경우에는 60퍼센트, 서로 볼 수 없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경우에는 70퍼센트가 더 높은 전기 충격을 가하는 데 복종했다고 한다. 아이히만 역시 집단 수용소에서 유대인의 처참한 몰골을 보았을 때는 구토를 하며 괴로워했던 데 반해, 사무실에 앉아 주로 문서를 통해 작전을 지시받고 명령하는 일에는 어렵지 않게 가담할 수 있었다.



사실 이는 1963년 한나 아렌트의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의해 촉발된 반응을 연상시킨다. 저자는 범인을 가학적인 괴물로 묘사하려는 검찰의 노력은 완전히 잘못된 관점에 기초한 것이며, 아이히만은 책상 앞에 앉아 주어진 임무만을 수행하는 주도권 없는 사무원에 훨씬 더 가깝다고 주장한다. [...] 이는 아마 우리 연구의 핵심적인 교훈일 것이다. 어떤 적대감도 지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만으로 끔찍한 파괴 과정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하는 활동의 해로운 영향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때에도, 당국이 기본적인 도덕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요구할 때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밀그램, 『권위에 대한 복종』 (프랑스어판에서 번역)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피험자가 버튼을 누르는 것을 주저하거나 거부할 때면 실험의 추이를 지켜보던 권위자가 개입해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고 지속적으로 언급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누군가의 권위에 의존함으로써 행동 근거를 자기 자신이 아닌 외부에 두는 경우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가 쉬워지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비도덕적인 명령을 수행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자기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는 것이면서도 그에 대한 책임을 다른 곳에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 역시 자신은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공무원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했으나,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이러한 합리화는 결코 용인될 수 없다(이와 관련된 내용은 추후 아렌트에 대한 글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밀그램은 자신의 실험 결과에 대해 다소 비관적으로 논평하면서, 자신이 목도한 "권위에 대한 복종"은 결코 드물게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며 위계나 서열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우리는 밀그램이 내린 비관적인 결론을 수용하며 이를 '어찌할 수 없는' 사회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이러한 분석을 발판 삼아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감행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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