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패의 역사

책 '인간의 흑역사' 리뷰

by SSM

Humans : A Brief History of How We F*cked It All Up 의 한국 제목은 '인간의 흑역사'이다. 원제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무능함에 대한 강력한 분노는 누그러졌지만 어느 정도 원작의 감성은 살린 제목 번역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어디까지나 역사책이다(흑역사이긴 하지만.) 작가 '톰 필립스'는 다양한 인간 실패의 사례를 정리하여 인간의 무능함에 대해 통찰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무능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모종의 심적 안정감과 위안을 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 스스로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는 그 엄청난 자만심을 산산조각 내주는데 의미가 있다.


작가는 뇌 발달 과정상 인간은 잘못된 의사결정 시스템을 장착하고 있다는 비주류적이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시작하여 다양한 인간 오류의 사례를 통해 인간의 발전은 순전 운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히틀러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천재 악당이 아닌 그저 자기애만 강했던 멍청한 지도자였다라든가, 상대편은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전투에서 패배한 군대의 얘기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작가는 인간이 얼마나 무능한지, 그리고 얼마나 심각하게 무능한지에 대해 설파한다.



물론, 인간은 작가의 생각만큼 그렇게 무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작가의 다른 책 - Truth: A Brief History of Total Bullsh*t - 을 보면, 작가가 인간 지능에 대한 엄청난 안티라는 것은 꽤 공개적인 사실이다. 또한 인간은 작가가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집단사고에 빠져있고, 학습효과가 전혀 없으며, 역사적이고 중대한 사안을 느낌적인 느낌으로 결정 내릴 정도로 무능한 존재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제시하는 사례들은 인간이 엄청나게 무능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이나 만물의 영장스러운 위엄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아주 유머러스하게 촌철살인 날리게 생기셨다

작가 '톰 필립스'는 언론인이자 유머 작가이다. 과거 영국 버즈피드 등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으며 현재는 'Full Fact' 라는 팩트 채킹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런 커리어 때문인지는 몰라도 책 자체가 매우 읽기 쉽고 유머러스하게 쓰였다. 글 전체적으로 엄청나게 난감한 사례들을 나열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이 이 책의 별미이며, 그 결과 엄청나게 우울하면서 동시에 엄청나게 웃긴 매우 신묘한 역사책이 탄생했다.




기존의 고리타분한 역사책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또 배꼽 잡을 정도로 유머러스한 책이 필요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계신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판단되는데, 어떻게 코로나19 같은 인간의 무능함의 산물이 전 세계를 휩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든다면 꼭 이 책을 집어 들길 바란다. 아마 필요 이상의 설명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