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얀 화이트에 대한 집착.
난 Z 브랜드 옷을 종종 입는다. 친구들 중 몇몇은 품질이 별로라고 평가 하기도 하지만 잘 고르면 꽤 괜찮은 원단을 사용하여 디자인을 잘 뽑은 옷들을 값싸게 고를 수 있다. 이 브랜드는 꽤 이름있는 브랜드의 경력 디자이너들을 영입하고 있기 때문에 쇼핑을 할 때면 종종 둘러보고는 한다.
옷장 안에 이 브랜드에서 산 화이트 셔츠 원피스가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오버사이즈핏이라 편하게 입으면서 활동 할 수 있을 것 같고 사용된 옷감도 터치감이 나쁘지 않다. 게다가 화이트는 가볍고 시원하면서 깔끔한 분위기를 주니 여름까지 입기에도 좋을 것 같다.
어떤 사이즈로 사야 핏이 더 나을지 몰라 두 크기의 사이즈 옷을 집어 들고 핏팅 룸으로 향했다.
옷을 착장 해보며 거울을 보는데,
앗… 같은 옷이지만 다른 화이트이다.
화이트를 바라보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얗게 보이는 모든 것이 화이트라고 심플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하얀 색들 사이에서도 구분을 지어 골라내는 디테일 한 사람들.
난 후자이다.
운이 나쁘다.
나한테 예쁜 핏의 사이즈의 화이트가 블루빛이 도는 화이트이다.
난 블루빛이 감도는 화이트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직업병인 것 같다.
화이트 원단의 경우 백색도를 보기 위해서UV 불빛 아래서 색 확인을 하는데, 백색도가 높을 수록 블루빛이 더 감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블루빛이 전혀 예쁘지가 않다. 형광증백제를 많이 넣은 것 같아 인공적인 느낌만 든다. 가볍고 깨끗하거나 우아한 느낌은 저 멀리 가버리고 퀄리티만 낮아 보인다. 게다가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는다.
난 우유빛 화이트가 좋다. 뽀얗고 포실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 더 고급스러운 화이트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스토어에서 디자인은 예쁘지만 블루빛을 가득 머금은 화이트 옷을 볼 때면, 더 고급스럽게 색을 뽑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우유빛 화이트도 단점이 있다. 아슬아슬 한 줄을 타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마치 몇번 입었던 것 같은 누런 화이트가 되고 만다. 그래서 난 비싼 브랜드에서 화이트 옷을 잘 사지는 않는다.
어차피 고급 매장에 걸려있는 완벽한 핏의 우아했던 화이트도 시간이 지나면 변색을 피할 수 없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든 사람이 나이 들어가는 것처럼.
운이 나쁜 와중에 좋은 일은, 이 브랜드가 전 세계에 수많은 스토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무슨말이냐면, 이 옷에 사용된 원단의 염색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뽀얀 우유빛 화이트의 옷이 나의 사이즈가 아니라 쇼핑의 즐거움이 반감 될 뻔 했지만, 그 시기에 동일 원단으로 생산된 내 사이즈의 옷도 어딘가에는 걸려 있다는 힌트를 준 것이다.
매장에 걸려있는 사이즈 옷들을 다 확인해보았다.
더 큰 사이즈는 있는데 내 사이즈는 없다.
좀 싫지만 그냥 살까.
하지만 같은 값을 내고 더 안 예쁜 옷을 사기는 싫다.
게다가 더 큰 사이즈도 있다는 것은, 이 원단이 사이즈에 따른 생산 제한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작은 사이즈 옷도 만들어졌을 확률이 더 높아졌다는 말이다.
내가 간 곳은 34번가 매장.
이 브랜드는 5번가에 여러 매장을 가지고 있다.
스토어 마다 상품에 차이가 있는지, 그래서 내가 놓친 옷이 없는지 체크도 할 겸, 내 사이즈의 화이트 옷도 찾아낼 겸,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겠다.
브라이언 파크 앞의 매장까지 내려왔다.
아......지친다......
너무 힘들어서 여기까지만 가봐야겠다.
오, 오, 오, 찾았다!
역시 있을 줄 알았어~~~!
하루가 뿌듯해졌다.
계산하고 나오는데, 태양을 가득 머금은 공원의 잔디가 더 싱싱하고 푸릇 해 보인다.
비록 지금은 옷장에만 걸려있는 신세가 되었지만, 고집스럽게 찾아다녔던 우유빛 화이트의 기억.
이번 가을에 조금 더 입어볼 수 있도록 집에서 만든 옷커버를 씌워줘야겠다.
어렵게 얻은 것이니 소중히 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