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_01]모든 일엔 방법이 있다.

(행복 한 스푼) #. 저 둘의 케미는, 감히 범잡을 수 없다.

by 달달보드레

아이보다 부모가 긴장되는 순간을 뽑으라면?

아마 그건, 아이의 첫 초등학교 입학식이 아닐까?


우리 집에도 그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의 기억을 되돌이켜보면,


극 T인 엄마는 빠진 준비물이 없나. 몇 시까지 가야 하지, 뭐 입고 가야 하지를 수도 없이 체크하며 그 긴장감을 해소하고 있었고.


극 F인 남자 둘은 그런 엄마 맘을 알기나 하는 건지, 입학식날 입히려고 곱게 다려놓은 옷을 망토라며 뒤집어쓰고 전투 놀이를 하고 있더랬지.


그래도 제 몸집보다 더 큰 책가방을 메며 뚤레뚤레 걸어 초등학교 정문을 지나, 현관을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느끼는 벅찬 감정은 부모라면 누구나 다 같을 것이다.


물론, 난 쪼르륵.

우리 집 남자는 주르륵.

그 양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어찌 됐든.

설레고 긴장되는 순간도 스쳐 지나가는 추억의 조각이 되고. 시간은 지나가고.


1학년 아이의 어리숙함이 엄마의 잔소리 버튼을 자극시키는 일이 점점 늘게 되는 건 인생의 진리인 것을.


[# Episode 01]: 모든 일엔 방법이 있다.


아빠: 아들! 오늘도 잘 다녀왔어?

아들: 응. 그런데 배트맨 만화 어제 몇 쪽까지 그렸지?

아빠: 학교에서 화장실은 어떻게 가? 아빠는 어렸을 때 화장실 가는 게 무섭더라고. 아빠는....

아들: 화장실 가본 적이 없는데? 손만 씻었어!

...


이 와중에 난 아들의 책가방의 지퍼를 양끝으로 쫙 해체한 후, 책가방 분리수거 작업을 한다.

출처를 모르는 색종이 조각. 지우개인지 고무인지 모르는 조각.


과감히 이 모든 건 쓰레기통행이다.

왜냐? 이미 수천번 아들에게 이거 버려도 돼?라고 물었지만, 단 한 번도 명쾌한 해답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버려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음을 아니, 일어났지만 나에겐 전달이 안될 걸지도. 무튼 수많은 경험치로 버리는 게 답임을 깨달았다.


책가방 분리수거 작업이 끝난 후,

매끈했던 알림장이 손길을 탄 흔적이 느껴진다.

엄마의 예리한 촉.


... 빳빳한 겉장을 펼치니. 오 뭔가 달라졌다!

(이 알림장도 줄간격이 1학년에 맞는 간격으로 사려고 나 혼자만, 애썼더랬지.. 나만 아는 수고로움..)


엄마: 아들 이게 뭐야?

아들:... (이미 배트맨 삼매경이라 들려도 들린 것이 아님)

엄마: 아들 이리 와봐. 이게 뭐야?

(와보라면서, 알림장 들고 아들에게 가는 건 뭘까)


아들: 알. 림. 장! 엄마 보여주래!


(#. 아들아.. 아들아...

내가 봐야 하면.. 내가 볼 수 있게.. 해야지.

선생님께서 뽑아주신 알림장, 엄마가 봐야 할 글씨가 잔뜩인 "내용면에 풀칠을 해서 붙이면" 엄마는 뒷 허연 여백만 보이잖니...)


엄마: (잔소리 시전 드릉드릉)

그 찰나.


아빠: 배트맨, 적으로부터 우리에게 중요한 편지가 왔다. 우리는 이 편지를 해독해야 해.

아들: (잠시 배트둥절..)


뭐 하나 했는데... 어라? 내 손의 알림장을 가지고 간다?


아빠: 중요한 편지라, 적군에게 들키지 않아야 해서 비밀리에 왔다. 같이 해독하자. 혹시 힌트 들은 거 없나?

아들: (곰곰 생각하다) 책이란 글자가 있던 것 같다.


... 아.... (저 둘을 누가 말리나...)


그로서,

그 둘은 천정의 전등에 종이를 요리조리 비추어보다,

한 명은 창문에 대고 알림장 들고 서 있고

한 명은 창문 건너편 반대편 베란다로 우다다다 달려가 어렴풋이 비치는 글자를 힘겹게 읽다가..

뭐라 읽는지 안 들린다며 다시 오라고 야단법석을 떨다가.. (베란다 문을 살짝 열지..)


배트맨이 탐정이 된 건지.

돋보기와 탐정모자를 어디선가 들고 나타난 아들.


#. 띠링띠링.

잔소리 시전은 그 둘의 케미로 시전도 못한 채,

결국 세 수 앞을 내다보신 건지

섬세하신 담임선생님의 알림장 안내 메시지로

일단락되었다.


기특하게도, 그 메시지 안에 읽을 책 매일 들고 다니기가 쓰여있었다. '책'이란 글자가 정말 힌트였다..


#. 돌이켜보면,

굳이 잔소리하지 않고

앞으로 이렇게 하라고 안내만 해주었음 될걸.


그 둘의 케미가 없었더라면. (아님, 어쩌면 아빠의 한 수 앞의 속 깊은 헤아림이었을까..)

난 또 이해 못 하는 속 좁은 엄마가 되었겠지.


5분만 기다렸음 이리 저절로 해결될 일을.


결론은,

#. 모든 일엔 방법이 있다.

#. 섣부른 아등바등은 금물. 조금 기다린다고 큰일이 벌어지진 않으니.

쉽게 되지 않겠지만, 한숨만큼만 조금 기다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