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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Together
Apr 05. 2021
옥주 이모는 행복할까?
옥주, 생애 첫 결단을 내리다.
4월의 그날은 유난히 볕이 좋았다. 옥주에게 볕이 좋은 날은 남들처럼 나들이를 가거나 커피 한잔 내려마시는 여유로운 날이 아닌 빨래하기 좋은 날이었다. 아침을 먹고 첫째와 시어머니가 티브이를 보고 있을 때 둘째를 업고 촉촉이 젖은 빨래를 빨래통 가득 넣어 옥상으로 올라갔다. 봄볕이 좋아 그런지 산더미 같은 빨래통의 무게도 가볍게 느껴졌다. 등에 업은 둘째도 나른한 햇살에 꾸벅꾸벅 졸며 칭얼대지 않았다. 옥주의 손과 발은 분주했지만 시간은 평온했다. 긴 빨랫줄에 젖은 빨래들을 탁탁 털어가며 씩씩하게 일곱 식구의 옷과 속옷 가지들을 널고 있을 때, 아래층 살림집에서 시어머니의 고함소리가 들렸다. 옥주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포대기를 고쳐 매고 빠르게 아래층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떨려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 한복판에 시어머니의 첫째 아들 그러니까 옥주의 큰 아주버님이 저승사자처럼 우뚝 서 있었다. 시어머니는 큰아들을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욕지거리를 해대며 소리치고 있었고 그런 시어머니를 큰아들은 아니꼽다는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옥주는 서둘러 첫째 딸아이를 찾았다. 아이는 큰방에서 멍하니 티브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딸아이를 안고 옥주는 재빨리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잠에서 깬 둘째가 울어댔고 밖에선 시어머니와 큰 아주버님이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싸우고 있었다. 혼이 나갈 것 같은 그 순간 남편의 소리가 들렸다. 오전일을 끝마치고 잠시 집에 들르는 시간이었다. 아수라장 같은 상황에 들어선 남편은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고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멈춰서있었다. 어릴 적부터 형에게는 꼼짝도 못 했던 남편은 형의 그림자만 봐도 머리를 숙일 정도로 형을 무서워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째 형의 얼굴도 못 본 채 살다 갑자기 나타난 형, 그것도 화가 잔뜩 난 상태로 어머니와 싸우고 있는 모습은 그의 사지를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둘째 아들이 나타나자 기세가 등등해진 시어머니의 목소리와 욕지거리는 더욱 상스러워졌다. 그럴수록 첫째 아들의 눈에선 살기가 느껴졌다. 시어머니의 부추김으로 형 앞에 우뚝 선 그의 입에서 "무, 무, 무슨 일이십니까"라는 말이 나왔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형의 커다란 손이 그의 마른 뺨을 내리쳤다. "뭐 이 새끼야? 무슨 일냐고? 싹수없는 새끼야 내 돈, 내 집 가지러 왔다! 니 새끼들 데리고 꺼져!" 얼떨떨한 그는 뻘게진 뺨을 어루만지며 멀뚱히 서 있었다. 큰아들의 행패에 시어머니가 달려들어 큰아들의 머리통을 내리치고 큰아들은 날뛰는 엄마를 밀쳐냈다. 그리고 모두 당장 그 집에서 나가라며 집의 명의가 자신의 소유고 아버지의 재산도 자신에게 넘길 것을 선포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문틈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 옥주의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 집에서 나가라고? 옥주에겐 세상의 전부인 이 집에서? 마귀할멈과 못된 시누이 둘이 살고 있지만 이 집은 자신이 지키고 있는 성 같은 존재였다. 갑자기 쳐들어온 악마 같은 놈이 옥주의 성을 차지하려는 그 순간 옥주는 굳게 잠긴 방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 순간 큰 아주버님, 아니 악마를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은 옥주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악마에게 달려들었다. 옥주는 온 힘을 다해 악마를 바닥에 눕혔고 그 위에 올라가 마구 짓밟았다. "아! 이 미친년! 저리 비켜 이 정신 나간 년아!" 악마는 옥주에게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약이 잔뜩 오른 옥주의 몸은 그럴수록 더욱 쌔게 악마의 몸을 짓눌렀다. "죽어버려! 죽어! 네가 뭐야? 뭔데! 죽어 죽어!!!" 옥주는 평생 살아오면서 참아왔던 분노와 억눌렸던 감정을 그 순간 다 쏟아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악마의 발버둥이 멈추고 옥주의 악도 수그러졌다. 옆에서 말리던 시어머니와 남편도 멍하니 옥주만 바라보고 있었다. 옥주의 방 문틈 사이로 시누이들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시어머니의 울음소리, 티브이 소리가 들려왔다. 깜깜한 방 안, 창문 너머 달빛이 옥주를 비쳤다. 무서운 꿈을 꾼 것일까?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옥주는 다시 눈을 감았다. 방 밖의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저 문 밖에 큰 아주버님이 아직도 있을까? 아이와 남편, 시어머니와 시누이 둘이 악마에게 붙들려 옥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옥주는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모두들 놀란 눈으로 옥주를 바라보았다. 남편이 다가와 옥주를 끌고 주방으로 갔다. 그는 냉수 한 잔을 내밀며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을 전했다. "형이 들어와서 산데. 우리가 나가야겠어. 엄마가 전세 내준 성남 지하집으로 우리가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옥주는 두렵지만 한편으론 기뻤다. 성은 잃었지만 네 식구만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마와의 전투가 있었던 그날부터 옥주의 마음속엔 뜨거운 불덩이가 자리 잡았다. 더 이상 세상이 무섭지 않았다. 아니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지금껏 자신을 가로막은 사람들이 별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자 겁나는 게 없었다. 성을 떠나며 옥주는 새로운 갑옷을 입은 여전사가 되어 지하의 보금자리로 당당히 들어섰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남편이지만 배관공일만큼은 성실했다. 큰아이는 새로운 집에서 조금씩 말문이 트였다. 옥주는 미싱을 샀다. 손재주가 좋은 옥주에게 수선일을 맡기는 사람이 생겼고 일감은 끊이지 않았다. 옥주의 손안에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반찬값 정도였다 삼겹살 파티를 할 정도로 늘어나고 외식을 하는 날이 생기면서 옥주는 자신감이 붙었다. 점포를 내야겠다고 마음먹고 동네를 기웃거리다 빨래방이 눈에 들어왔다. 빨래방 안에 있는 수선집을 보던 찰나였다. 빨래라면 징글맞게 했다. 기쁠 때나 슬플 때, 자다가도 한 것이 빨래였다. 빨래를 옥주의 손이 아닌 기계가 대신해준다고 생각하니 쾌감이 느껴졌다. 세상의 모든 빨래는 자신이 해야 할 것만 같았는데 그 모든 빨래를 기계 안으로 떨쳐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날아갈 것 같았다. 옥주는 빨래방을 하기로 결심했다. 빨래방 한편에 수선실을 만들어 빨래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옷들을 고쳐냈다. 옥주의 빨래방은 늘 분주했다. 빨래방을 지키고 있는 옥주는 성을 지키고 있을 때처럼 근면하고 우직해 오가는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다. 옥주의 사업은 잘 말려지는 빨래 같았지만 그 무렵 아이들의 발달은 너무도 더디게 멈춰있었다. 유치원 상담을 간 옥주는 선생님으로부터 아이의 문제를 듣게 됐다.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을 못 하는 것이라는 사실과 상호작용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옥주는 화가 났다. 아이에 대해 말하는 선생님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고 마음에 뜨거운 불덩이가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