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졌다.
존재가 사물을 인식하기 시작한 날. 존재가 살아가기 시작한 날.
욕탕에 들어서며 어제와 다른 풍경을 느꼈다. 풍경은 어제와 같았다. 타일의 색도, 물의 온도도, 거울의 위치도 변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오직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모든 선이 흐릿했다. 사물의 경계가 정확히 잡히지 않았고, 수직과 수평은 어딘가 미세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시력 탓이라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피곤해서 그런가, 대충 그렇게 넘겼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선이 분명했다. 사물은 ‘대충 그쯤’이 아니라, 정확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인식감만 또렷해진 것이다. 그 느낌이 좋았다.
마치 존재가 직접 보고 있다는 감각처럼.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대리 존재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필터를 낀 채, 한 겹 건너서 현실을 받아들이는 느낌. 그래서 늘 미세하게 어긋나 있었고,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그날, 그 필터가 사라졌다고 느꼈다. 존재의 불안이 벗겨진 느낌이었다. 머리로 이해한 것이 아니었다. 인지가 인식으로 바뀌는 순간이 몸으로 내려왔다.
어깨가 먼저 가벼워졌고, 숨이 깊어졌고, 그 감각은 팔을 타고 손끝으로 흘러갔다. 이 감각은 언젠가 활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눈빛을 통해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자신감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조금 달랐다.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 내가 여기에 있다는 자각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 몸과 감각이 처음으로 받아들인 순간. 존재의 불안이 벗겨진 자리에 투명한 밀도가 남았다. 텅 빈 투명함이 있고, 투명한 젤로 가득 찬 투명함도 있다면 그날의 투명함은 후자에 가까웠다.
아무것도 없지 않지만 아무것에도 가려지지 않은 상태.
그날은
무언가를 새로 얻은 날이라기보다, 존재가 자기 자리로 돌아온 날이었다.
그리고도 한 달이 지난 후에 이 글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