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따위가?

영화 속 여자들 모음

by 정오의 햇빛

하우스메이드에서는

가석방으로 나온 한 젊은 여자가 가정부로 입주가정부로 들어간다.

조현병 증세를 보이는 주인 여자, 완벽해 보이는 주인 남자,

그리고 그 집을 둘러싼 복잡한 인물 관계.


영화는 느리게, 아주 조심스럽게 긴장을 쌓아 올린다.

조금씩 숨 막히는 긴장, 불안, 궁금증을 관객에게 심어 놓고

어느 순간, 그동안 막아놓은 것이 한순간에 터진다.


빠른 전개와 폭발에도 불구하고 따라가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나는 등장인물을 판단하지 않았다.

조현병을 보이는 여자에게도, 교도소에서 나온 메이드에게도,

주인 남자에게도 ‘나쁜 놈’이라는 단정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저 “저들은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를 보는 느낌.

마지막에 남자가 가장 큰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인간.

그가 살아온 모든 경험과 성취는 누군가가 정한 틀 속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이 구조 속에서 인간은 누구도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


묘하게 찰스왕이 생각났다. 그 엄마에게서는 여왕을 본 듯하다.

찰스가 지금 그만큼 왕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게 장하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프로젝트 Y

두 여자가 몸을 팔아 돈을 모으고, 그 돈이 한순간에 사기와 조작으로 날아간다.

그 과정에서 엄마도, 조직도, 권력자도, 결국 검은 수렁에 빠져 죽는다.

모두가 물질과 역할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두 여자는 살아남는다.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발목을 붙잡는 밑바닥 삶에도 몸부림치며

조용히 걸어간다.


“뭐라도 하면서 살면 되지”라는 신체적 결심,

이 마지막 장면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이 아름다웠다.


《라퓨타》와 세 영화의 연결

라퓨타에서 여자가 세상을 없애는 선택을 하는 장면이 프로젝트 Y와 하우스메이드와 맞닿는다.

라퓨타에서는 소녀가 문물을 파괴하고 천공의 성을 사라지게 하는 주문을 외운다.

하우스메이드에서는 완벽한 가정의 모습뒤에 감춰진 학대와 광기를 가정부와 안주인이 파괴한다.

프로젝트 Y에서는 물질의 게임과 남자들이 만든 세계의 폭력의 구조와 금괴를 수렁에 던져 넣는다.


모두가 폭력적이지 않고, 피도 없고, 깃발도 없다.

그저 더 이상 견디지 않겠다는 조용한 결정 그것이 세상의 방향을 바꾼다.

여자들이 만드는 새로운 세상


세 편 모두 남자들이 만든 시스템, 속도, 권력, 물질의 풍요 속에서

연약하고 밑바닥 삶을 사는 여자들이 서툴지만 우여곡절 천신만고를 겪으며 세상에 길을 낸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걸 보면서 판단하지 않고, 속도에 휘말리지 않고,

그저 인간이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과 그 안에서 발휘되는 생존과 선택을 지켜보았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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