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자 쓰는지 두고보자

3500자 쳤네

by 정오의 햇빛

5:00

잠에서 깨어나 가만히 기다려도 조용하다. 오늘은 아무 소식이 없나 보다 하고

잠들려는 순간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다리면 한참 후에라도 말이 나오는구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점점 또렷해졌다.

이제 내가 밤새 만들어진 사유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아챘나보다.


7:00

식사준비를 하고 피라미드를 벗어날 준비를 한다.

집은 나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 공급소이다.

오래 머물면 방출하지 못한 에너지가 무료함으로 변한다.


8:00

등뼈를 오래 끓여 우거지탕을 만들었다.

날마다 차가운 김밥만 길에서 다가 집에 앉아 따뜻한 국밥먹으니

새롭다. 아침은 집에서 먹고 출발해야겠다.


9:00

김밥 세개를 장만해서 서재로 향한다.

오늘은 어떤 일들을 하게 될까

규현과 40분통화를 했다. 용건없는 통화는 말이 흘러넘치게 된다.

김밥을 싸달라고 한다. 이건 뭔가.


10:00

데스크 톱 컴이 화면도 크고 좋다. 노트북의 작은 화면으로 글을 쓰다가 새로운 컴앞에 앉으니 신세계다.


10:56

글 하나를 완성했다. 780자

아침부터 껌처럼 입안에서 돌고 있던 말들이 글로 바뀌었다.

언어 번역기는 이미 나와있고 말을 글로 바꿔주는 것도 나와있다.

아직 생각을 글로 바꿔주는 기계가 없어서

생각을 말로 하고 다시 그걸 글로 바꿔야 한다.

어쩌면 생각은 이미 우리가 서로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유되어있다는 것을 몰라서 각각의 하드에 입력하고 있을지도 .

눈감고 서로의 주파수를 공유하면 생각이 이리저리 돌아다닐 지도 모른다.

무슨 크라임이라는 영화속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프리 크라임 톰 크루주


11:00

건너편에 앉은 남자애가 쳇머리를 흔든다. 거슬린다.

나도 흔들어본다. 어지럽다.

일기를 쓰기시작 했다.


11:08

다시 밤새 건져올린 이야기를 정리한다. 오늘은 몇개를 정리해낼지 . 어제는 9개였다.

두번째 글을 마쳤다. 700자.

이젠 글자수를 세고 있다. 뭔가 하나씩 세밀해지는 느낌이다.


11:36

글 하나를 더 쓴 후에는 김밥을 들고 사라봉에 가려고 한다.

아직 글은 시작도 안했는데 끝난 후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옆자리에 통화하는 아줌마 앞자리의 마스크 쓴 남자가 풍기는 니코틴냄새 옆자리의 쳇머리 흔드는 젊은 남자

왜 이렇게 거슬리는것인가. 나는 거슬리며 존재중이다.

글하나 완성 1000자


12:51

이제 차가운 김밥먹을 시간.

다리도 움직일 시간.

글 세개를 썼다. 알바로 따지자면 오만원 정도의 생산이다.

글 한개에 만오천원 원고료로 따지면 2400자에 오만원이니까

원고지 한장에 오천원 쯤이다.

아 원고지는 빈칸도 글자로 쳐주니까 좀 더 쳐주겠구나.

오천원이라고 치고.

내 글이 원고지 한장에 오천원정도의 가치가 있지는 않을 것 같지만

최저임금으로 따진 것이니 그렇다 해도 고평가된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완성된 원고지 한장은 적지 않은 시간과 두뇌활동의 결과이긴 하다.

아무짝에 쓰일데 없는 두뇌활동.

나의 하루는 십만원 정도의 가치가 있으니 날마다 십만원을 쓰면서 살고 있다고 볼수 있다.

날마다 십만원의 돈을 받아들고 여기저기 뿌리면서 살고 있다.

거의 재벌이네.


1:25

샐러리와 사과 김밥 한 줄

자리를 떴다가 다시 돌아오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아까 자리로 찾아가는데 드는 시간.


2:21

글 하나 완성 1100

1시간 걸렸네.

화장실에 갈 시간.

일어서야 할 시간.

사라봉 한바퀴 걷고 김밥 알바 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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