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악도 1

by 정오의 햇빛

삼악도를 본 느낌은 처음에는 이게 뭐냐 하는 당혹감이었다.

앞뒤도 옆도 원인도 결과도 이유조차 알수 없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졸지 않고 열심히 보았는데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건지를 파악할수 없었다.

아마 영화가 의식에 아직 도착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인거 같다.


하루가 지나고 나자 비로소 영화의 이야기와 생각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영화볼때는 장면이 느리게 흩어져 입력되어 토막난 장면의 연속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장면이 연결되었다.

그제야 영화가 전하고자 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는 이렇게 전개된다.

광신집단이 있고 그들은 어린 소녀를 재물로 불태운다.

아이는 고통속에서 죽어가며 너희를 다 죽일것이며 내가 부활하면 또 모두 죽이겠다고

저주하고 죽었다.

저주대로 사이비종교의 지도자가족은 모두 죽고 사이비종교도 지하로 스며들어 명맥만 유지한다.

외부인들이 이 집단의 정체를 파악하ㅏ려 접근하고 부활 의식을 치르는 순간 소녀는 살아나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몰살한다. 그리고 끝.


90분간 이어지는 장면들은 괴이하고 공포스러우며 서사를 따라가기 보다는 화면을 따라가는

경험이 주가 된다. 그렇다고 볼거리가 아주 볼만하지도 않았다.

다른 어디서 보지 못한 장면이라는 점은 인정할만하다.


서사를 따라가기보다는 화면을 따라 다니느라 영화가 끝났을때는 무슨이야긴가 하고

전체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자 생각이 올라왔다.

왜 아이를 부활시켰을까? 저주를 믿지 않았던 걸까?

사이비종교인건 정통종교이건 믿는다면 금기는 지켜져야 한다.

요구되는 행동도 일어나야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편의대로 해석하고 행동을 선택하며 금기를 무시한다.


영화속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인간의 자기 편의적 선택과 신념의 왜곡을 보여준다.

사실은 신념도 뭣도 없어보이기도 한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질서와 금기의 위반 역시 다른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고 피해야 할 것은 피하며 위험에 빠트리는 행동은 스스로

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신념과 논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때로는 내 자신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



모두 자기만의 신념이 있지 않을까?

자신의 신념을 아무렇지 않게 짓밟고 살아간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날 내면의 힘이 깨어나면 모두 죽게 되는건지도 모른다.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질서를 저해하는 나의 행동들

그 모습은 사이비종교에 빠진 마을 사람들의 행동과 닮아있다.

그리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금기시된 행동을 하는 것.

이제 공중도덕과 질서를 잘 지켜야겠다.


《삼악도》는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렬하고

역겨운 경험으로 변했다.
사이비 종교에 빠진 마을 사람이나, 자기 논리에 빠진 나나, 결국 다를 바 없다는 생각.
나는 영화 속 저주와 공포를 통해, 내 삶과 내 행동을 돌아보는 계기를 얻었다.

그 점에서, 《삼악도》는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신념, 금기, 책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킨 훌륭한 영화였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형편없는 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무지한 생각인가?

영화를 느끼기 위해서 하루가 필요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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