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는 법

삼악도가 가르쳐준 영화보는 법

by 정오의 햇빛

영화를 보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앉아 입을 다물고 스크린을 바라보는 일.

그때 해야 할 일은 어쩌면 하나뿐이다.
내 기대를 내려놓는 것.

영화의 내용이 나의 기대에 맞는지, 이 영화가 나를 충분히 즐겁게 하는지,
이야기의 수준이 나를 만족시키는지 그런 것들은 사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지 시간을 내고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잠시 멈춘 채 감독이 그려낸 세계를 따라가 보는 일.


요즘 영화를 자주 보면서,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영화 속에는 내 판단이나 기대가 끼어들 자리가 별로 없다는 것을.

감독이 보여주겠다고 한 영화를 보기로 했다면 그가 보여주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원하는 영화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영화를 보는 태도가 아닐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랫동안 영화가 나를 즐겁게 해주기를 기대했다.

재미있어야 하고 나를 놀라게 해야 하고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장면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나 영화는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감독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한 결과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쩌면 존중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사람과의 관계가 떠올랐다.

우리는 종종 상대가 내가 원하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이랬으면 좋겠고 저랬으면 좋겠고 이렇게 변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상대는 단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상대를 만나면서 그 사람이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바람일지도 모른다.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그 관계를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대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마도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일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사람과의 관계를 배웠다.

영화를 보는 일은 기대를 충족받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세계를 존중하는 연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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