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방출하고

생각을 느낌으로 대신하는 시간

by 정오의 햇빛

날마다 아침 저녁 찬물로 샤워를 한다.
처음에는 단지 찬물샤워에 도전하기 위해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샤워를 하면서도 그 시간을 피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그 마음을 알아채자 차가움을 피하는 마음으로 찬물 샤워를 하는것은 이율배반이라 생각했다.

기왕 찬물 샤워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기껍게 찬물을 대해야 하지 않을까?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차가움만을 느끼면서 샤워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샤워를 마치고 빨리 몸을 닦아야 할 이유도 없다. 큰 타월로 서둘러 몸을 감쌀 필요도 없다.

차가움이 목적이었으니 차가움을 그대로 느끼면 된다.

이제는 차가움이 싫지 않다. 오히려 그 순간에 정신이 모두 모인다.


찬물이 몸에 닿는 순간, 온 정신이 거기에 빼앗긴다.
다른 생각이 올라올 틈이 없다.

그동안 나는 내가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생각은 늘 흐르고 있었고, 나는 그 생각 속에 그냥 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찬물 샤워를 하면서 처음으로 느꼈다. 생각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차가움이 지나가고 몸이 다시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또 다른 감각이 찾아온다. 몸이 서서히 따뜻해지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포근하고 편안하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행복감이 올라온다. 그 감각이 충분히 강해서 역시 다른 생각이 올라올 틈이 없다.


그래서 요즘은 자기 전에 찬물 샤워를 하고 잔다.
그렇게 하면 행복한 상태로 잠이 든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상태가 이어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기분이 좋다.
몸은 가볍고, 잠은 깊었고, 매일이 새로운 하루처럼 느껴진다.


이 변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생각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생각이 계속 흐르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지금은 다르다. 평소에는 마음이 조용하다. 대신 글을 쓸 때만 의식적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위해서다.


생각을 일부러 꺼내고, 정리하고, 글로 쓴다. 그리고 나면 다시 조용해진다.

요즘 나는 생각을 붙잡고 사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해서 방출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생각이 나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할 때 생각을 꺼내 쓰는 느낌이다.


찬물 샤워가 내 삶에 가져온 변화는 단순히 몸이 깨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감각이 또렷해지면서 생각이 잠잠해졌고, 마음은 조용해졌고, 감정은 안정되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 시간을 보내다가도 헤어지는 순간이 좋다. 만남이 싫어서가 아니다.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나를 조금 좁혀야 한다. 생각도, 몸도, 관심도 상대에게 맞추어야 한다.

하지만 헤어지는 순간 나는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온다.

가만히 혼자가 되면 마음도, 몸도, 생각도 그 자리에 머문다.


그 순간 이전의 느낌들이 털어지고 나는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숨이 편해지고 몸이 풀린다.

예전에는 이 시간을 견디기 어려웠다. 사람과 헤어지면 갑자기 버려진 듯한 느낌이 들었고, 집에 돌아와도 마음이 안정되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지금은 다르다.

사람과 나누어 가졌던 나의 관심과 애정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내가 더 커지는 느낌이다. 포근해지고 충만해진다. 상대와 나누어 가지던 나를 내가 홀로 다 차지하는 느낌이다.

원래의 나로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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