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처럼 오고

썰물처럼 빠지는 트라우마.

by 정오의 햇빛

몇일 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여러 개의 꿈이 떠올랐다.

꿈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선명해서, 그것들은 차라리 과거의 장면에 가까웠다.

이미 지나간 일들, 이미 끝난 시간들이 다시 현재로 밀려 올라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기억들을 말로 붙잡고 싶지 않았다. 꺼내는 순간 더 또렷해질 것 같았고, 더 아파질 것 같았다.


하지만 붙잡지 않으려는 마음과는 다르게, 그 생각들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가만히 두어도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까지 깊게 흔들어 놓았다. 슬픔이 올라왔고,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내가 그토록 비난하던 행동을 나 역시 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상황이 그랬고, 나는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누군가에게 충분히 차갑고 야멸찬 행동이었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비난은 더 이상 타인을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그 생각을 계속 붙잡고 있는 일은 괴로웠다. 즐겁지 않았고, 의미 있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결국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두 시간 반 동안 화면을 넘기며 생각을 밀어냈다. 머리가 아플 때까지, 다시 잠이 올 때까지.

아침은 그렇게 흘러갔다. 쉽게 일어나지 못했고, 밖으로 나갈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가 단순히 게으름이나 편안함 때문일까. 유튜브가 더 쉬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편해서 그런 걸까. 그런데 오늘은 그 설명이 충분하지 않게 느껴졌다. 어쩌면 더 깊은 곳에서, 나를 붙잡고 있는 어떤 무거운 감정이 있는 건 아닐까.


슬픔, 죄책감, 그리고 삶 자체를 밀어내고 싶은 마음.

예전에는 이런 상태가 힘들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반복되는 하루였고, 생각 없이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이 감정들이 분명히 ‘무거운 일’이라는 걸 알았고, ‘가슴이 아픈 일’이라는 걸 느꼈다. 그 감정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되살아났다.

이 감정을 안고 살아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내키지 않고, 슬프고, 때로는 살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스며 있다.


그래서일까. 정리해서 내려놓으면 좋을 텐데, 그 정리라는 행위 자체가 너무 큰 고통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단순히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아픈 장면을 다시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그 생각들을 치워두지도 못한 채, 마음 한편에 띄워놓고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알고 있다. 그렇게 가라앉은 것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순간이 되면 다시 떠올라 나를 흔들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그 자리에서 멈춰 서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외면이 반복을 만든다. 붙잡기 힘들어서, 정리하기 힘들어서 피했던 선택들이 결국 같은 경험을 되돌려주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그 장면을 들여다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해결하지 못한 채로 그 무게를 안고 있다. 그것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처럼.


지겹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어도 감정은 파도처럼 오간다.

멈추거나 사라지지 않네. 죽어야 끝나는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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