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의미는 사람구경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한 일이 아니다.
단순히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으로는 관계라고 부르기 어렵다.
같은 공간에 앉아 있다고 해서,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고 해서 서로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각자는 자기 발로 걷고, 각자의 생각 속에서 영화를 본다. 함께 있음에도 각자 따로 존재한다.
종종 사람을 연구하듯이 곰곰이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거창한 탐구라기보다, 할 일이 없어서 생기는 여백 같은 것이다. 시간의 빈칸 속에서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가늠해보는 일.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사실에 닿는다. 내가 원하는 정도의 관계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형식적인 관계, 서비스처럼 오가는 대화, 의례적인 안부. 그런 것들은 관계라기보다는 역할 수행에 가깝다.
관계는 뭔가가 오가야 한다. 생각이든, 감정이든, 농담이든. 그런데 대부분의 만남에서는 그것이 흐르지 않는다. 말은 오가지만, 대화는 없다.
오늘 김민구를 만났다. 차를 마시고, 한 시간쯤 걸었다. 두 시간 남짓 함께 있었다. 걷는 동안에는 괜찮았다. 걷는 행위는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치에 앉은 순간, 관계의 공백이 드러났다. 그는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알았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라는 것을.
함께 있을 줄 모르는 사람과 함께 있는 일은 지리멸렬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성인과의 대화를 나눴다는 느낌은 없었다. 어떤 통찰도, 새로운 시선도, 사고의 확장도 없었다. 그저 어린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주고, 돌아온 느낌.
그럼에도 나는 또 그를 만날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시간 속에서, 누군가 나를 불러낸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처럼 느껴진다. 내용이 비어 있어도, 형식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치르는 두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재미없는 사람과 보내는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보다 훨씬 길게 느껴진다. 대화가 없는 대화, 반복되는 이야기, 발전 없는 사고. 결국 나는 그에게 말해버렸다.
왜 그렇게 한결같냐고. 왜 변화가 없냐고.
사람은 왜 만나야 할까.
나는 관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사람을 만난다. 집 밖으로 나가기 위한 이유, 움직이기 위한 계기. 그래서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서로를 만나는 것’은 어렵다.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단순한 것이다. 쉽진 않지만.
내가 하지 못한 생각을 들려주는 사람, 나의 말을 받아 이어갈 수 있는 사람, 말장난 하나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꼭 깊지 않아도 좋다. 다만 살아 있는 대화가 오가는 사람.
그런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때로는 차라리 혼자가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런 매력도 느껴지지 않는 관계를 억지로 유지하는 것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정직하다. 찜질방에 가거나, 교회에 가거나,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머무는 편이 더 편안하다.
사람 없이 살 수는 없지만, 아무 사람이나 만나며 살 수도 없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계속 찾고 있다.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말장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