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나를 나에게서 추출해내는 것.
사백오십 개의 글을 썼다는 것은 단순한 기록의 양을 넘어, ‘나’를 분리해내는 과정의 축적이다. 그 글들 속에는 분명 내가 있다. 나의 생각, 감정,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러나 그 글쓰기의 행위는 단순히 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와 그것들을 떼어내는 작업에 가깝다.
처음에는 나와 생각, 감정, 느낌이 하나였다. 떠오르는 생각은 곧 나였고, 감정의 흐름은 그대로 나의 상태였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볼 수 없었고, 그저 함께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의식 자체가 곧 ‘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생각을 문장으로 옮기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나’가 아니라 ‘대상’이 된다. 감정을 표현하는 순간, 그것은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관찰되는 것이 된다. 이 반복을 통해 나와 나의 생각, 감정, 판단은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생각과 함께 흘러가지 않는다. 감정은 여전히 느껴지지만, 그것이 곧 나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떠오르는 생각들 역시 더 이상 나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놓인 하나의 현상처럼 존재한다.
이전에는 자동적인 사고가 곧 나였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분리되지 않은 채 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자동적인 사고조차도 ‘나가 아닌 것’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되었다.
과거의 ‘나’라고 믿었던 인식들은 더 이상 나를 구성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단지 지나가는 생각일 뿐이며, 내가 붙잡지 않는 한 나와 동일시되지 않는다.
이 상태는 명상에서 말하는 “나는 에고가 아니다”라는 이해와 맞닿아 있다.
생각, 감정, 판단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들이 ‘나’는 아니다. 나는 그것들을 경험하는 자리이며, 바라보는 자리이다.
결국, 사백오십 개의 글은 ‘나를 표현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나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었다. 나는 글을 쓰며 나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나로부터 한 한걸음 떨어져 나왔다.
이미 나는 예전처럼 생각과 함께 흘러가지 않는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다.
글을 쓰며 이러한 지점에 오게 되리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누군가가 이미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경험한 것만이 나에게 존재한다.
글을 쓰기 전까지, 나는 생각과 함께 흘러가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리에 서 있다.
그 차이는 누군가의 설명으로는 닿지 않는다. 지나와야만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변화는 배운 것이 아니라, 겪은 것이다. 이해한 것이 아니라, 확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