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 파자마 잠옷을 입은 소년

홀로 코스트

by 정오의 햇빛

유태인 수용소 이야기는 여러 번 보았다.
그래서 아는 내용일 것 같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영화였다.


The Boy in the Striped Pyjamas는 사건을 설명하지 않는다.
8살 아이의 눈으로, 이해되지 않은 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영화 시작하면서 흐르는 자막 한 줄이 기억에 남는다.

"유년은 설명이 아니라 감각으로 세계를 통과하는 시간이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 간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장면들은 아이에게는 그저 이상한 공간일 뿐이다.
설명은 없고, 이유도 없다.
사람은 사라지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오르고, 고약한 냄새만 남는다.


나는 알고 있지만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말하면 안 될 것 같은 상태.

영화는 끝까지 이해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끝까지 모른 채로 그 안에 들어간다.
나는 그 결말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영화는 이야기가 아니라 체험처럼 남는다.


감정이 아니라 감각으로 들어오고, 이해는 끝내 도착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났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알고 있는 나와 모르고 있는 아이가 한 몸에 있는 느낌.

입이 막힌 것처럼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봐버린 것 같다.

설명은 없고 장면만 남는다. 옳고 그름도, 결론도 없다.

그저 이해되지 않은 채로 끝까지 밀려가는 경험.

이렇게 감각으로 남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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