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중국인 남자와 결혼했다
"지금 한 달에 얼마 써?"
평소 회사 옆자리에 앉아서 나를 잘 챙겨주시는 이 과장님이 대뜸 물어보셨다.
" 한 2,000위안 정도 쓰는 것 같아요. "
" 집과 교통비 회사에서 보조해 주고, 아침 점심 저녁 모두 회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결국 주말 잠깐 노는 것에만 2천 위안 정도 쓰는 거네.
그런데 이 남자 한 달 1,500위안 벌어.
이 남자가 제희씨 용돈도 안 되는 돈을 벌고 있다고."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국에서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중국 어학연수 중 만난 가난한 중국인 여자친구와 결혼하여 중국에서 생활하고 계신 이 과장님이다.
그렇게 뼈 때려 맞은 지가 15년 전이네.
"네가 그때 중국 남자랑 결혼한다고 했을 때 반대해서 미안해.
내가 하도 반대하니까, 그때 네가 그랬어.
언니, 이 사람 너무 착해..."
결혼 15년이 지나도록 이혼 없이 살고 있는 우리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하나 둘 우리의 결혼 반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격렬한(?) 반대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나의 결혼을 찬성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그 모든 반대 중에 유일하게 이 과장님의 대화가 기억나는 것은
내가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가난이라는 현실을 숫자로 콕 끄집어 내주셨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이 가난한 중국인 남자와의 결혼을 망설였다.
좋은 남자이기 이전에 결혼은 현실이기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렇게 싫어했던 새벽 미사를 매일 다녔다.
그때 이전 그리고 그때 이후 내가 한 번도 새벽 미사에 가지 않은 걸 보면,
남편과의 결혼이 일생일대 최대 고민이긴 했나 보다.
이렇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들은 학교에서도, 책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당시 20대였던 내가 아줌마와 할머니들로만 그득그득한 새벽 미사를 다닌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파견 성가 (미사 마지막 노래)로 이 곡이 나오자 그 후로는 새벽 미사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달 중국에 가서 바로 가난한 남자와 혼인신고했다.
-사랑의 송가-
하느님 말씀 전한다 해도 그 무슨 소용 있나
사랑 없이는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적지 않은 미혼 여성들이 나와 같은 상황으로 고민하는 것을 종종 본다.
"가난하지만 사람은 착한데 결혼할까요?"
"No!"
15년 전 이 과장님과 같은 답변을 한다.
결혼은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은 사랑만으로 헤쳐나가기에는 버겁다.
그런데 가난한 남자가 3S가 있다면 고려해 볼 만하다.
나는 이 3S 때문에 한 달에 20만 원도 못 벌던 남자와 결혼했다.
까짓꺼 내가 벌어 먹여살리지 뭐.
그리고...
결혼 5년 차, 남편은 대출 겁쟁이인 나를 설득하여 첫 집을 샀다.
결혼 10년 차, 남편은 나의 연봉을 뛰어넘었다.
결혼 15년 차, 남편은 나와 아이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평생 동반자가 될 배우자를 찾는 기준 3S
내가 3S를 믿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