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빨간 열매는 왜 생겼을까?
빨간 열매를 기대하며 종현이 베개를 살짝 들어 올렸다. 어제는 없었던 먹음직스러운 빨간 열매가 놓여있었다. 종현이가 예쁜 말과 행동을 많이 하면 더 잘 익은 빨간 열매가 들어있는데 오늘이 딱 그런 열매였다. 종현이가 하루종일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지 궁금했다. 빨간 열매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종현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아삭’
오늘은 문화센터에서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종현이 엄마는 엄청 바쁘다. 수업이 늦게 끝나기 때문에 저녁을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저녁만 챙기면 일이 덜 할 텐데, 청소, 빨래, 아직은 스스로 공부하는 것이 힘든 종현이까지 챙겨야 한다.
종현이가 간식을 먹으며 만화를 보고 있는 동안에 종현이 엄마는 이리 총총총, 저리 총총총, 달그락, 달그락 거렸다. 그런 엄마를 보고 종현이는 아무 생각이 없나 보다.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헤헤 거린다. 해야 할 일도 휘리릭 끝내면 좋으련만 끊임없이 장난을 치며 시간을 질질 끈다.
종현이 엄마의 얼굴이 빨개진다. 참는 것이 보인다. 화를 꾹꾹 눌러 담은 종현이 엄마는 가끔 아프다. 화를 너무 참으면 병이 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 종현이 엄마가 자주 아프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한다.
“종현아, 오늘 수업 있어. 얼른 끝내고 가자.”
“응”
대답만 잘하는 종현이. 입과 몸이 따로 논다. 겨우겨우 같은 말을 수십 번 하고 나서야 수업에 갔다. 과학수업은 종현이가 참 좋아하는 수업이다. 친한 친구도 만날 수 있고, 매번 다른 것들을 만들어서 더 좋아한다. 매번 만드니 수업이 끝나면 두 손 가득 들어야 할 것이 많다. 종현이는 한 번도 엄마의 짐을 먼저 들어준 적이 없다. 이 날은 뭐가 달랐을까?
‘응, 이상하다. 오늘따라 엄마가 더 힘들어 보이네. 내가 말을 잘 안 들어서 그런가? 장난을 쳐서 그런가.’
수업이 끝나고 잘 웃지 않는 엄마를 보고 종현이는 신경이 쓰였다.
“엄마, 오늘 만든 거는 내가 들게. 엄마가 매번 들고 집에 가느라 힘들잖아.”
자신의 짐을 스스로 챙기는 종현이를 보고 엄마는 활짝 웃었다. 환해진 엄마의 얼굴을 보고, 종현이도 웃었다.
“엄마, 운전하느라 힘들지? 오늘도 나 태워줘서 고마워.”
엄마의 미소가 더 커졌다. 자신의 일은 스스로 챙기고, 고생한 엄마에게 고마워라는 말을 하자 빨간 열매가 생긴 것이었다. 그것도 하루에 두 가지 일을 해서 종현이의 빨간 열매가 더 탐스럽게 익었던 것이다.
‘아, 종현이가 오늘 이런 일이 있었구나. 종현이 덕분에 배고프지 않겠는걸. 고마워, 종현아. 내일도 나 배고프지 않게 빨간 열매 만들어줘.’
오랜만에 배고픔을 달래서인지 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친칠라는 배부른 배를 작은 손으로 통통 두드리며 종현이 옆에서 다시 잠들었다.
to be continued
(아홉 살 쫑이 엄마가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어떻게 하면 고칠까 고민하다가 쓴 부분이에요. 짐을 나누어 드는 일,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해주는 엄마에게 '고맙다'라고 말해주는 것, 쉽지만 몸과 입에 착 달라붙어 있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더라고요.
이야기의 힘일까요? 자신의 말과 행동에 따라서 빨간 열매가 생긴다는 것을 읽고는 예전보다는 더 사랑스러운 행동을 해주네요.^^ 여전히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