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함께하는 취미
취미가 많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외향적인 줄 안다. “성격 좋으시겠어요.” “활발하시겠어요” 사람들은 활동적이면 외향적이라고 생각하나보다. 하지만 나는 말수가 적은 데다 낯을 가린다. 지금도 말이 많거나 말솜씨가 수려한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참 부럽다.
취미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배로 늘었다. 물론 사교를 목적으로 취미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단순히 취미가 좋았을 뿐 한꺼번에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어색했다. 처음 보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었다. 취미생활로 갑자기 만난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서툴렀다.
내가 주로 맺던 관계는 1:1 관계였다. 한 명 한 명과 눈을 바라보고 밀도 있게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할 때 가까워졌다. 반면 취미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는 넓고 얕은 관계가 대부분이었다. 너무 친하지는 않지만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 정도의 거리가 적절했다. 나와 맞지 않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취미활동 전후에 이어지는 식사 모임, 술자리, 소모임 등등의 자리가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취미에 따라 만나는 모임의 분위기가 제각각이었다. 사람들을 일반화할 순 없지만, 평균적으로 살사 모임에서는 자신을 드러내고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바둑 모임에서는 생각이 깊고 분석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요가 수련에는 건강과 몸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명상에는 내향적이고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취미에 따라 모임의 방식이나 대화 주제가 달랐다. 관계의 내공이 부족했던 나는 매번 바뀌는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모임에서는 적절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과하거나 지루했다.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면 모임을 피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모임을 대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시간을 내서 참석해도 깊은 교감 없이 어색한 몇 마디 속에 끝나는 자리가 뜬구름을 잡는 것 같았다. 소모적으로 느껴졌다. 모임에 갔다 오면 피곤하고 마음이 공허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취미생활을 오랫동안 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소소하게는 물건을 빌리거나 자리를 맡아달라는 부탁부터, 함께 행사를 준비하거나 초대하는 일까지 모든 일이 그렇지만 취미 역시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몇 번 얼굴을 보는 사이라고 생각했지만, 관계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될 때가 많았다. 친하게 지내지 않던 사람과 함께 할 때 전혀 안면이 없는 사람과 몇 번 모임에서 얼굴이라도 마주친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안면이 있는 사람과는 대단한 말을 나누지 않았더라도 눈빛 한번, 인사 몇 마디, 즐거운 감정을 주고받았던 경험이 관계의 밑거름이 되었다. 중요한 순간에 대화를 나누려면 이전의 서사가 필요했다. 준비단계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면 탈이 났다. 모르는 관계에서 서로 기대치를 조율하려면 시간이 배로 들었다. 좋은 말주변과 정교한 관계의 기술도 시간으로 차근차근 쌓은 익숙함과 신뢰감을 뛰어넘는 것은 어려웠다.
관계는 벽돌처럼 하나하나 거대한 서사와 맥락 속에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이었다. 약간은 아쉬움이 느껴지는 가벼운 대화와 좋은 분위기를 공유하는 것 또한 관계였다. 다만 속도에만 차이가 있었다. 소수의 사람과 맺은 관계가 상대방에게 집중해서 깊고 빠른 것이었다면, 다수와의 관계는 느리게 완행하는 것이었다.
그전까지는 관계에도 흐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정확한 타이밍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오해 없이 잘 전달하는 데 신경을 썼다. 숙맥이었다. 생각해보면 관계는 둘이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인데 내가 원하는 속도만 고집하는 것은 욕심이었다. 관계에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면 진작에 깨달았을 사실을 나는 취미생활을 하면서 조금 늦게 깨달았다.
누군가 ‘익숙해지면 잘할 수 있게 된다.’고 했던가?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비슷한 상황에 여러 번 놓이다 보니 사람들과 지내는 법을 배웠다. 지금도 사회성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쉬워졌다. 관계의 결은 언제나 비슷하기에 취미생활로 다져진 사회성은 다른 단체생활에도 도움이 되었다.
활동적이면 사람들과 잘 지내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대가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 자주 만나면 지내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여러모로 취미생활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