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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Feb 09. 2021

일상의 틈

4. 휴식학개론

 일 년에 한두 번씩 단식을 한다. 단식법은 체질마다 방법이 다양한데, 나의 경우에는 이틀을 물과 음료를 마시고 공복 상태로 지낸다. 사람들이 종종 어떻게 버티냐고 물어보지만, 생각처럼 힘들진 않다. 처음 하루는 계속 음식 생각이 나다가 하루가 넘어가면 지금까지 해온 게 아깝기도 하고 몸이 어느 정도 적응해서 이어나갈 수 있다. 오히려 내게 어려운 것은 식사 중에 위의 70%가 찼을 때 숟가락을 내려놓는 일이다. 휴식도 식사와 마찬가지인 것 같다.


  휴직하는 동안 푹 쉬면서 피로가 많이 회복되었다. 하는 일도, 만나는 사람도 적어서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었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처음 휴직할 때만 해도 복귀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체력이 생기면서 복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평화롭게 사는 것도 좋지만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고 싶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삶이 예전처럼 복잡해졌다. 마주치는 사람의 수, 해야 하는 업무들, 부딪히는 문제들이 배로 늘었고, 예상치 못했던 야근이나 저녁 약속, 회식까지 저녁까지 바쁠 때도 많았다. 삶의 속도는 배로 빨라졌는데, 그것을 정리하거나 소화할 시간은 줄었다. 처음 복귀할 때는 사람들을 보면 반가웠고 일할 때 재미있었지만, 삶의 여유가 줄면서 초반의 충분한 체력과 평온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회사 일이 많을수록 조급함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생활이 빨라지면서 행동에도 관성이 붙었다. 바쁠수록 쉬면 안 될 것 같았다. 손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쉴 때도 의미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사람들에 치이고 나면 엉뚱한 사람에게 날카로워졌다. 나도 모르게 말을 실수하거나 짜증을 내고 하루 종일 마음 불편한 날이 늘었다. 한가할 때는 비우는 것에 잘 집중하면 그만이었지만, 바쁜 상황에서 나만 쉬겠다고 고집부릴 수도 없었다. 일상에서 틈틈이 비워야 했다. 


  일상의 속도가 버거울 때는 의도적으로 멈췄다. 긴 회의를 마치면 잠시나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퇴근 시간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일이 몰아친 후에는 휴식을 사수했다. 사람들을 만난 후에는 소화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적어도 일주일에 평일 하루 저녁과 주말 반나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일상의 공백은 빠른 속도에 맞춰 성실하게 쫓아가려는 나에게 숨을 고를 여유를 주었다. 멈추는 것만으로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를 지킬 수 있었다.


  일상의 속도뿐만 아니라 일의 양도 조절했다. 매일 조금씩 방에 쌓아놓은 물건을 정리하듯이, 일상에 벌어지는 일을 하루하루 정리했다. 거절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던 사소한 부탁부터, 무리인 줄 알면서도 떠안고 약속들은 내 컨디션에 따라 과감하게 정리하거나 뒤로 미루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했다. 매일같이 선택의 순간에 부딪히면 내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할 일을 신중히 고르고 집중할 때 만족감이 늘었다. 일상을 살아내기 급급했던 예전에는 일을 완성하는 데 몰입해서 일의 과정이나 의미를 충분히 느끼지 못할 때가 많았다. 삶을 살아가기보다 기계적으로 내 역할을 해내는 느낌이었다. 일상에 방해 거리가 줄고 삶이 간결해지면서 오히려 여유가 생겨서 좋은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았다. 아프기 전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


  아이슈타인의 ‘삶을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아서, 중심을 잡으려면 앞으로 가야 한다.’말을 좋아한다. 바쁜 일상에서 틈틈이 쉬는 것도 같은 원리인 것 같다. 사람의 적응력이란 참 무서워서 극단에 가까워질수록 관성으로 변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병을 얻으면서 체력이 변했지만,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무리하기 전에 쉬고, 늘어지기 전에 다시 움직이면서 지내는 중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의 틈에서 때론 쉬다가 때론 숨었다가 하루하루를 농밀하게 느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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