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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Jan 17. 2021

요리, 식사의 본질

3. 슬기로운 취미생활

  자취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요리에 소질이 없다. 처음 나만의 자취방이 생겼을 때는 요리책을 보고 하나씩 시도했는데, 요즘은 과일, 채소, 견과류 같은 생 음식을 주로 먹거나 요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음식들을 먹는다. 프라이팬에 고기와 채소를 적당하게 볶은 후에 올리브 오일과 향신료를 넣으면 재료에 상관없이 비슷한 맛이 나는데, 이 요리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자연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때 요리를 배워보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군데를 알아보다 사찰에서 직접 운영하는 사찰음식 강의를 등록했다. 조미료를 쓰지 않고 원료의 맛을 최대한 활용하는 점이 건강하게 느껴졌고, 배우기도 쉬울 것 같았다.


  첫 수업 날, 내가 한참 잘못 생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강생 대부분이 4~50대였다. 딱 봐도 포스가 느껴졌다. 하루에 요리를 3개씩 배웠는데, 처음 30분 동안 스님이 시연하면서 주의사항을 알려주면, 수강생들이 조별로 나뉘어 음식을 하는 것이었다. 


  30분 설명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기본기가 없으니 스님 말의 절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관찰하려고 하면 요리가 끝나고 다음 요리가 시작되었다. 레시피가 적힌 종이를 받았지만, 과연 내가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윽고 요리가 시작하면서 더욱 멘붕이었다. 채를 써는 소리가 테이블마다 울려 퍼졌다. 나는 칼질이 서툴렀던 터라, 재료 준비도 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양념장 만들기, 그릇 준비, 설거지 등 단순한 일을 맡았다. 


  알고 봤더니 사찰요리는 서양의 요리를 섭렵한 후에 찾는 곳이었다. 수강생들의 내공이 높은 것이 당연했다. 요리가 완성되면 조별로 음식을 차리고 시음을 하는데, 종종 스님보다 더 요리를 잘하거나 시연 때 배우지 않은 내용을 응용하는 수강생들도 있었다. 요리 초보인 내가 올 곳이 아니었다.


  첫 수업을 마치고 남은 수업을 계속 참석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수업 수준이 너무 높았다. 내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내가 계속 다니는 것이 조원들에게 민폐인 것 같았다. 마음을 비우고 요리 경험을 늘리자는 생각으로 남은 수업을 꾸준히 나갔다. 양념장 만드는 법만이라도 배우려고 했다. 같은 조 아주머니들이 재료를 다듬고 요리하는 것을 곁눈질로 익혔다.


  요리를 마치면, 1인 가구의 사정을 아시는 아주머니들이 남은 음식을 넉넉히 챙겨주셨다. 덕분에 수업이 끝나면 그릇 가득 음식을 받았다. 요리를 배우러 가는 것인지 음식을 받으러 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해프닝이지만 음식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였다. 하나의 음식이 식탁 앞에 오기까지 눈앞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의 노력과 정성이 있었다. 농작물에서부터 식자재가 되고 근사한 요리가 되어 그릇에 담기까지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다. 덤덤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음식에 대한 감사함을 들으면서 많은 사람의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음식과, 먹는 행위를 생각해보았다. 요리하는 행위는 베풂이었고, 먹는 행위는 힐링이었다. 


  아직 요리실력은 제자리이지만 먹는 방식은 예전과 다르다. 눈앞의 음식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완성품인 것을 알고 난 후에는 과하게 욕심부리지 않는다. 눈앞의 음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술품처럼 음미하게 되었다. 식사시간마다 얼굴 모를 누군가의 시간과 정성이 차려진 식탁을 선물 받는 건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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