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와 직업의 갈림길에서
가깝게 지내는 직장동료가 회사생활에 통 재미를 못 붙이는 것 같다. 눈빛이나 표정에 생기가 없고, 회사 소식이나 주위 동료들에 대한 시선이 요즘 들어 차갑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걸 알기에 신경이 쓰인다.
취미에 재미를 붙이면서 취미생활을 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일주일에 한두 번 하던 취미가 주 3~4회로, 급기야 잠자고 출근하는 시간을 제외한 시간을 거의 모두 썼다. 에너지 대부분을 취미에 쏟았다. 어느 시점에 이르자, 직업이 뭔지 나조차 헷갈렸다. 출근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특히 한창 요가에 빠져있을 때는 동작으로 열심히 골반을 풀고 어깨를 열어놓고, 회사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느라 경직된 자세로 일하는 나를 발견하면 속상했다. 내 삶의 지향점과 회사가 대치되는 것 같았다. 취미생활을 직업으로 삼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한창 취미에 빠져있을 때는 회사생활에 연연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내가 회사생활에 재미를 못 느끼는 것처럼 남들도 회사 일에 별다른 가치를 두지 않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즐기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승진이나 업무에 매여있는 사람들보다 회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회사 밖의 삶을 즐기는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있는 동안 내가 도태되는 느낌이었다. 회사가 지루하다는 사실을 자각할수록 회사 일에 재미를 붙이기 어려웠다. 회사에서 일하는 게 당연한데, 누가 업무로 말을 걸면 짜증이 났다. 업무에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잔 실수가 늘었다. 좋지 않은 피드백을 받으면 더 싫증이 나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퇴근하면 난 쏜살같이 살사 바로, 바둑학원으로, 요가원으로 도피했다. 퇴근과 함께 진짜 내 인생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내 삶은 그곳에 있었다. 취미를 할 때는 회사와 달리 웃음꽃과 열정과 환희가 넘쳐났다. 회사에 있을 때와 취미생활을 하는 내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루 8시간, 하루의 1/3을 불만과 외면 속에 흘려보내는 것은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로 보낸 시간은 내 에너지를 소모했다. 불만족스러운 감정과 시간이 인생에 축적되면서 냉소적인 태도와 불평불만은 습관이 되었다. 현실의 나는 매사에 비판적이면서 수동적인 투덜 쟁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은 서서히 진행되었기에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수년이 걸렸다.
취미생활을 발전시켜서 직업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당연하게 여기던 회사생활을 ‘시한부’로 생각하면서, 남은 시간을 잘 보내고 싶었다. 곧 떠날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갈등 상황에서도 동료들과 마지막까지 잘 지내고 싶다는 다짐을 떠올리면서 평정을 찾았다.
회사를 떠날 마음을 먹으면서, 예상과 달리 회사생활에 활력을 찾았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많아지고, 새로운 업무를 맡으면서 생활이 단단해졌다. 회사 행사나 사보 인터뷰에 참여하고, 점심시간에 동료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면서 회사생활이 다채로워졌다. 예전에 느끼던 구속감과 억압감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지만, 문제가 생겨도 뭐 그리 나쁘지 않았다.
회사생활이 불만족스러울 때 가장 힘든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저마다의 사정은 다르겠지만, 혼자만의 답답한 터널을 지나고 있을 동료에게 묵묵한 격려를 보내고 싶다. 조만간 커피 한 잔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