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리 위에 있었다.
도심 집회로 길이 막혀 버스에서 내려, 친구와의 약속 장소까지 걷던 중이었다.
잠시 멈춰 선 그곳에서
문득 내일 있을 수학 시험이 떠올랐다.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한 문제도 풀 수 없을 거란 불안이 덮쳐왔다.
지금 약속 장소로 갈까, 아니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 공부를 해야 할까.
가슴을 억누르는 답답함에 눈을 떴다.
꿈이었다.
'이 나이에도 시험 압박의 꿈을 꾸다니.'
휴대폰을 보니 5시 29분.
5시 30분에 맞춰 둔 알람이 울렸다.
불쾌한 꿈이 잠을 밀어냈다.
어젯밤 아들의 부탁도 생각나 침대에서 내려왔다.
큰아이는 기말고사 기간이다.
퇴근하고 돌아온 밤늦은 시간, 아이는 거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너무 늦었다며 얼른 자라고 등을 떠밀었다.
시험 마지막 날이라 좀 더 공부하고 자겠다는 아이는,
내 강한 요청에 못 이긴 척 누우며 말했다.
아침에 운동 갈 때 꼭 깨워달라고.
늦은 밤공부보다 새벽이 낫다며, 나는 꼭 깨워주겠다고 약속하고 불을 껐다.
"오늘 무슨 과목 시험이야"
평소와 다르게 살짝 흔들어도 잠에서 깬 아들은 거실에 나오며 대답을 했다.
"도덕이랑 수학요"
"수학이구나... 공부는 많이 했어?"
"수학은 학원에서 내신 대비를 했고, 도덕을 좀 더 보려고요"
수학 공식 모른 채 시험 치게 되어 공포스러웠던 꿈속의 내 모습이 생각나서 피식 웃었다.
오전 11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3일간의 기말고사를 마친 아이의 목소리는 밝았다.
객관식은 다 맞은 것 같고, 서술형 한 문제를 틀린 것 같단다.
"수학 100점은 인간미 없어 보이니까 그 정도가 딱 좋아"라고 위로했다.
30분쯤 지나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님, OO이랑 통화가 안 돼서요. 직접 연락드렸습니다."
"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OO가 수학 시험에서 객관식 답안을 마킹하지 않고 제출했어요. 어쩌죠..."
'이를 어쩐다.'
아이는 아마 틀렸다는 마지막 서술형 문제를 끝까지 붙잡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 본인이 객관식 답을 OMR 카드에 옮겨 적지 않았다는 사실도,
시험 종료 10분 전 답지에 잘 적었는지 확인하라는 감독 선생님의 지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과 통화로 자신의 실수를 인지하게 된 아이는
꺼이꺼이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본인이 생각해도 너무 기가 막히고,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중학교 2학년은 아직 너무 어린 아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중학교 성적 진짜 아무것도 아냐"
"고등학교 시험이나 수능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냐"
"이런 기회를 통해서 새로운 걸 하나 배웠잖니."
하지만 그 어떤 말로도 아이의 속상함은 위로되지 않아 보였다.
아물려는 상처를 파내는 것처럼
아이는 자신의 실수를 자꾸 들춰내면서 자신을 더 자책하고 있었다
나 역시 아이가 본인 노력의 결과를 확인할 수 없게 된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다.
우리 부부는 주말 내내 아이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지나친 자책에 빠지지 않게 손을 잡고 끌어올렸다.
일요일 밤, 등교를 앞둔 아이가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현실이 다시 밀려왔나 보다.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아
전날의 꿈 이야기를 꺼냈다.
“꿈에서 수학 빵점 맞을까 봐 얼마나 무섭던지…”
“진짜 시험이었으면 그 상태로는 빵점이었을 거야. 얼마나 다행이야.”
“근데 너는 빵점? ”
아이가 피식 웃었다.
“아빠, 나도 빵점은 아니거든. 서술형 35점이잖아요.”
정색하는 아이를 안아줬다.
이젠 괜찮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