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던 세계에 입장하다
“이번 주말 뭐 해?”
“피부과 가요.”
A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피부과? 어디가 안 좋나 싶었는데,
“예약해 둔 관리받으러요.”
그리고는 덧붙였다.
“지난주엔 제모했는데… 두 번은 못 하겠더라고요. 아파서.”
그 말을 듣고 있던 B가 거들었다.
“점도 빼고, 미백도 하고, 피부 톤도 좀 밝게 하고… 뭐 이것저것요.”
“너도 했어?”
“몇 달 동안 마스크 썼잖아요. 그때 슬쩍했죠.”
그제야 알겠다.
A도, B도… 어딘가 좋아졌었구나.
잠을 많이 잤겠거니 했는데,
피부가 조용히 말하고 있었던 거다.
40대 남자동료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볼 일은,
거의 없다.
그들의 피부 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아직은 낯선 일이니까.
이 믿기지 않는 광경에 대해
나와 동갑내기인 C에게 물어봤다.
“요즘 아저씨들도 피부과 다녀?”
“나도 했는데. 지난달 휴가 때 점 빼고 사마귀도 제거하고.”
“…헐. 갑자기 왜?”
“만족도 엄청나. 자신감도 생기고. J 상무도 피부과 다니고, 그룹장도 이번에 다녀왔대.”
피부과 다니는 중년 남자들이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내 선입견 속에서, 그건 늘 부자 여자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어딘가 멀게 느껴지던 삶.
선크림을 매일 바르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조차
최근에야 알게 된 나로서는
‘이 얼굴이 관리한다고 달라질까’ 싶은 회의감이 컸다.
그런데 다음 날
점심시간
옆자리 동료가 병원 좀 다녀오겠다고 했다.
“어디 아파?”
“레이저 제모 예약이요.”
“많이 아프다며? 시술 후 근무가 돼?”
“마취 10분, 시술 5분, 진정팩 10분. 점심시간이면 충분하죠.”
그리고는 내 턱을 흘깃 보며 말했다.
“선배도 꼭 해야 해요. 진짜.”
순간, 조금 멍해졌다.
매일 마주 보며 일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외모에 신경 쓰고 있을 줄이야.
나만 몰랐다는 사실이 묘하게 서운했다.
조금 뒤처진 기분이었다.
그 감정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다.
익숙한 얼굴들 사이에서 나만 알지 못했던 진실,
그게 자꾸 마음을 건드렸다.
수염이 많아 면도에 질려 있던 나는
제모라도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혼자 가기 민망해서, 아내를 대동했다.
예약시간에 맞춰 도착한 피부과는
내가 상상했던 공간과는 많이 달랐다.
대기실엔 남자들이 더 많았고,
얼굴 가득 마취크림을 바르고,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요즘 친구들이 왜 그렇게 뽀얗나 했더니…’
배신감 비슷한 감정이 스쳤다.
얼굴을 체크하고, 사진을 찍더니
코디네이터가 중국집 메뉴판 같은 시술 리스트를 펼쳤다.
“이 세트가 제일 인기 많고, 가성비도 좋아요.”
카드를 꺼내려는 순간,
아내가 조용히 내 옆구리를 찔렀다.
“네. 우선 제모부터 해볼게요.”
그렇게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
제모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알게 됐다.
잃어버린 피부는
고통을 통과한 자만이 되찾을 수 있다는 걸.
최신형이라고 자랑하던 레이저 제모기는
딱 그 순간만큼은 나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그냥 수염 많은 아저씨로 살란다.’ 싶을 만큼.
어느 듯 제모 7회 차.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레이저는 ‘검은 수염’에만 반응한다는 걸.
나는 이미 흰 수염이 자라기 시작한 얼굴이었다.
제모로 사라진 건 검은 수염뿐,
나는 흰 수염의 아저씨가 되었다.
제모는 했지만, 면도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래도
거뭇했던 턱 주변 자국은 사라졌고,
면도 시간도 절반으로 줄었다.
이 변화에 눈치챈 사람은
내게 제모를 추천했던 옆자리 동료,
그리고 한 사람 더 있었다.
“수염 없어도 되는 거면, 우리 아들도 시켜요.
굵어지면 더 아프다던데.”
벌써 수염이 나기 시작한 중2 아들을 둔 와이프였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없어도 돼. 그딴 거 진짜 필요 없어.”
아침마다 면도하느라 소모된 내 시간,
피부 트러블, 면도날 가격,
그리고 피부에 대해 사라진 자신감 같은 것들.
그건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아들과 함께 ‘수염 없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