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노인들
** SK 대학생봉사단 SUNNY 와글와글 인생글 팀에서 제작한 칼럼임을 밝힙니다.
오후 2시, 시청 앞 광장은 시끌시끌하다. 잔뜩 힘을 준 목소리가 광장 앞에 울려퍼진다. 빨간 글씨로 탄핵 무효가 적힌 종이를 들고, 태극기를 힘차게 흔드는 노인들이 보인다. 박근혜 전대통령을 석방해야 한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와 현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무겁게 뒤섞여 분위기는 고조된다. 마이크를 든 어떤 노인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탄핵 무효!” 라는 소리를 꽥 지르자 대중은 일동 박수를 친다. 3시간의 열렬한 집회가 끝내고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이 가벼워보인다. 1919년의 3.1 운동을 실제로 보았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어느 젊은이는 키득거리며 지나가는 노인들의 거뭇한 얼굴을 보고 “일당 받는 할 일 없는 노인네들이라며 손가락질 했지만, 이런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그들은 아랑곳 않고 당당했다. 조롱투의 말과 뒤섞인 의기양양한 노인들의 발걸음이 사뭇 생경하다. 나는 감히 그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탄핵 반대, 박근혜 석방이라는 말이 담긴 목소리가 아닌, 그들의 삶이 담긴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 본 인터뷰에 등장하는 이춘배 씨는 가상 인물임을 밝힙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올해 일흔 다섯이 된 이춘배이올시다..
날도 더울실텐데 집회 나오는거 힘들지 않으세요? 나오신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힘들긴 뭐가 힘들어. 나는 대통령님이 감옥에서 그런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게 더 힘든 사람이야. 집회 나온지는 오해로 딱 4년차구만. 16년도 겨울부터 나왔으니까.. 매주 빠지지 않고 나왔어. 여기 사람들이 나보고 나무라고 불러. 눈이오나 비가오나 그 자리에 있다고
가족분들이 이런데 나오는거 반대하시진 않으셨어요?
반대는 무슨. 난 반대해줄 가족도 없어.
왜 그런지 여쭤봐도 될까요? 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싶어요
뭘 그런걸 묻고 그래. 다 내 잘못이었어.. 사정을 말하자면 아주 복잡한데, 말하자면 말이야.. 내가 아내를 아주 못살게 굴었어. 소홀하게 대한게 컸지. 그 사람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울지도..그래서 스물아홉때인가? 그때 어린애 두 명을 놔두고 저 멀리 도망가버렸어. 그 때가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일이야. 지금도 가끔 밤에 눈물이 나.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자녀 두 분은 지금 어디 계세요?
개 버릇 어디 못준다고 아내 도망간 슬픔에 빠져서 자식들한테도 소홀하게 대했지. 챙겨주지도 못하고. 한창 클 때였는데 애들 밥도 잘 안챙겨먹이고 그랬어. 나쁜 아빠였지. 가끔 연락은 오는데 첫째는 어떤 남자랑 산다는 것 같고 둘째는 이년전에 연락온게 마지막이야. 아무도 없어.
가족 없이 혼자 사시는건 힘들지 않으세요?
적적하지. 원래 젊을 때는 힘이 좋아서 공사판도 전전하고 내 밭떼기 가지고 농사일도 하면서 자식들 먹여 살렸는데 이게 지금은 맘대로 안돼. 이제 나이 들어서 써주는 곳도 없고, IMF때 가지고 있는 땅도 다 팔아버려서 이제 남은거 하나도 없어. 지금 영등포에 작은 방 얻어서 수급 받은 돈으로 방세 내고 근근히 먹고살고 있는데 힘들어. 지금 날씨가 더워져서 더 힘들어. 쪽방은 열이 잘 안빠져나가거든. 그래도 영등포에는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점심은 교회가서 해결하고 그래.
그럼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태극기 집회는 왜 이렇게 열성적으로 참여하시나요?
당연히 종북좌파들이 집권 세력을 잡는걸 막기 위해서지. 당신은 모르겠지만, 좌파 세력이 집권하고 차례차례 나라가 망해갔어. 다 북한 지령을 받고 나라를 망하게하려는 빨갱이들 세력이야. 박정희 대통령님이 집권했을 때 얼마나 나라가 풍요로웠는지 당신은 몰라. 우리가 그 때 얼마나 살기 좋았는지.. 그 때만 생각하면 그리워 죽겠어. 다 같이 열심히 하면 우리 모두 잘살 수 있는 시기였지. 그 때는 아내도 있고 딸들도 있고 정말 좋았던 시대였어.
같이 참여하시는 분들이랑 공감대도 많으시겠어요
맞아. 사람들 때문에 나오는 것도 있어. 지금 사람들이랑 같이 옛날 얘기하고 어울리면 얼마나 신나는지 몰라. 그리고 혼자 그 컴컴한 방에 들어앉아있으면 얼마나 우울한지 몰라. 삭신도 쑤시고방도 좁고 그래서 엄청 불편해. 근데 같이 집회나가는 노인들이랑 모여있으면 얼마나 힘이 생기는데. 내가 태극기집회는 영등포에서 제일 빠삭하거든. 사회 나가면 늙은이라고 받아주지도 않아. 그렇다고 집에 누가 있기라도 하나? 내가 어울릴 수 있는 곳이 거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석방되더라도 그 집회는 계속 나가고 싶어.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는게 얼마나 즐거운데
태극기집회가 끝나시면 무척 서운하실것 같아요. 애착이 강하신것 같은데.
상상도 하기 싫어. 나같은 노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마땅한줄 알아. 가게만 가도 눈치주는게 젊은 사람들이야. 나같은 노인은 특히나 말이야. 근데 거기는 그런게 없어. 오히려 나오는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주고 같이 호응해주고. 나한테는 그 사람들이 가족이야. 그리고 내가 집회에 나오면 언론에서도 추켜세워주고 정치인들도 우리 목소리에 귀기울여줘. 바뀔것 같다는 희망이랑 사명감 때문에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키는거야.
마지막으로 질문하고 싶습니다. 젋은이들이 태극기집회에 대한 인식이 안좋은건 아시죠? 이 사람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나도 젊었을 때가 있었어. 단지 젊었을 때가 다를 뿐이지. 그렇다고 당신들이 우리를 욕할 권리는 없어. 우리는 이게 맞는 사람인거야. 우리가 없었으면 당신들도 이런 살기 좋은 나라에서 못 살았어.
태극기집회는 노인들에게는 일종의 ‘사회적 놀이 공간’이었다. 사회에서 배제된 노인들이 심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자 사회적 소속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그들을 ‘틀딱’, ‘태극기부대’, ‘일당받는 노인’이라고 비하한다. 하지만 집회에 참석하는 노인들의 삶을 가까이서 살펴보면, 그들은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또한 우리와 똑같이 가장 즐겁고 좋았던 때를 향수하고 추억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노인은 점점 고독해진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세대가 맞지 않다는 이유로 그들은 사회의변두리로 점점 밀려난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속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다. 선택지가 없어진 그들이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행하는 사회적 움직임은 어쩌면 그들이 사회에서 살아있다는 존재를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욕구가 투영된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우리의 미래이며, 우리의 연장선상이다. 이들에게 행해지는 폭력적인 언사는 결국에 인간의 본성에 대한 손가락질이며 이는 결국 행해지는 손가락질에 불과하다.
노인은 결코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우리고, 우리는 그들이다.
<SK SUNNY 와글와글 인생글 인식개선 관련 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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