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내가 여기서 일한다는 거 비밀이야
그 여자의 사정
나는 돈가스 가게에서 일한다. 사장이 아닌 직원이다. 나이 40에 주인도 아닌 피고용인으로 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40대가 되면 아이 키워놓고 뭔가 우아한 일을 하며 살고 있거나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아이들 교육에 집중하며 학교 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열혈 엄마가 되어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막연하게 생각만 한 것은 커다랗게 분 풍선껌처럼 금세 터져버린다.
아! 열혈 엄마가 맞긴 하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옆으로 눈 돌릴 틈 없는 열혈 워킹맘.
내가 돈가스 가게에서 일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하여간에 그놈의 돈이 문제다. 일을 하게 된 아주 심플한 이유이다.
영원 불멸을 꿈꿨던 전업주부로서의 일상은 결혼한 지 9년만에 코로나와 함께 끝이 났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3년 전, 조그만 중소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하필이면 그때.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이건 뭐 실직자가 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나에겐 커다란 충격이었다. 남편의 통보에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음과 동시에 기차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세팅해놓은 삶의 기준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일들이 닥쳤을 때 내 의식의 흐름은 빠르게 부정적으로 달려간다.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체념과 수긍, 앞으로의 계획 따윈 세울 수 없다. 내 머리속엔 이미 ‘남편이 일을 그만뒀다 = 우리는 이제 거지가 된다’는 결과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말하고 덤덤히 앉아 있는 남편을 붙잡고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데? 우리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
답도 없는 공허한 질문을 뚫린 입으로 쏟아냈다. 조그만 충격에도 흔들리는 연두부 멘탈 소유자인 나는 만만한 남편을 달달 볶았다.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기까지 얼마나 고민했는지 따윈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불안한 것에 비해 남편은 어느정도 정리가 된 상태라 평온했다. 못된 나는 남편이 경청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비수를 꽂았다.
“나 일 안 해도 되는 거지? 어?”
말을 내뱉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아! 이 무슨 무책임한 말이냐. 부부라고 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힘들 때 힘이 되어주고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며 주례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분명히 “네!”라고 대답하지 않았더냐.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는 얼마나 상심이 크겠냐고, 어떻게든 이겨내 보자고 말해야 하는 게 아내의 도리가 아니더냐!
남편이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 여편네가 미쳤나 생각 중일까, 이 철없는 아내를 어쩌면 좋을지 생각 중일까. 아니면 하루빨리 안정을 찾아서 이 여자를 안심시켜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남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소망이 간절했다. 남편은 내 눈을 보며 입을 뗐다.
“너무 지나친 걱정은 하지 마. 괜찮아질 거야.”
고통이든 분노든 슬픔이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는 말이 생각난다. 잘 못 참는 사람들이 먼저 들고 일어난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었다.
남편은 이후로도 변함이 없었다. 밥도 잘 먹고 아이들 앞에서도 늘 여유로웠으며 꾸준히 일도 했다. 직업이 프리랜서로 바뀐 것 말고는 변화가 없었다. 나만 온전치 못했다. 매일 가슴이 답답하고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된 것 마냥 신세를 한탄했다. 이런 현실을 만든 남편이 원망스러웠지만 이 와중에도 흔들림 없는 에이스침대 같은 남편에게 말해봤자 득될 것이 없으니 혼자 상심하고 혼자 침잠했다.
내가 이 난리법석을 피우고 계속 걱정한 이유도 결국 돈이었다. 내가 이렇게 속물일 줄이야. 사람의 행복이 꼭 돈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고 책에서 보지 않았던가? 남편에게도 우리는 절대 돈에 얽매이며 살지 말자고 자주 이야기 나눴으면서도 결국 나도 똑같은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 표본이었다. 나에겐 행복도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프리랜서라는 직업의 특징상 고정적인 수입이 없다보니 매달 생활비가 빠듯했다. 나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정말 싫었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 하듯이 돈에 아쉬운 사람인 내가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찾은 자리가 지금 일하고 있는 돈가스 가게이다.
내 상황에서 이보다 더 좋은 일자리는 없었다. 아이들 등교 시키고 난 후 출근, 하교 전 퇴근, 게다가 주말에는 쉼. 돈이 제일 아쉬운 상황이었지만 아직은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사장님도 지인이라 내 사정들을 봐준다고 했다. 이 정도면 최상의 조건이 아닌가.
일자리가 해결되고 나니 또 다른 근심이 밀려왔다.
내가 여기서 일한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어쩌지? 라는 걱정과 수치심. 알게 모르게 남들 시선을 의식하며 살고 있었던 나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해야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머릿속으로는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생각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귀천을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 밑바닥까지 보게 되는 이 현실.
나는 이 모든 일이 일시적인 후퇴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일 친한 친구에게만 슬쩍 알려주고 다른 지인들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들에게도 “엄마 돈가스 가게에서 일한다고 말하지 마. 알았지?”라며 입단속 시키는 치졸함을 보였다.
다행히도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대면 만남에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가 나를 도왔다. 나라에서 사람 만나지 말라고 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내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안도가 되기도 했다.
부정적인 사람에게 변화는 도전이 아닌 불안의 연속이다.
내 인생은 이제 어떻게 될까?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삶 속으로 점점 끌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