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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내자 Mar 05. 2024

5년만에 옷 쇼핑을 했다.

내 통바지를 보내며...


언제부터였나.

아마도 코로나 터지고 밖을 나가지 못했던 때일거다.

갑자기 일을 하게 되면서 매일 입는 옷이 교복처럼 정해지자 나는 옷 쇼핑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매일 입는 옷이라고는 검정색 티와 검정색 바지였을 뿐.

집에 있는 옷 중에 제일 편한 옷을 선택하여 주구장창 입었다.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씩 빨아서 입는 생활의 무한 반복.

옷 고르는 시간과 쓸데없는 고민들을 싹둑 잘라버린 아주 편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옷을 입고 다니게 된 내 모습이 놀라울 때도 있었다.

멋과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과거의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과거의 무분별한 옷 쇼핑을 즐기며 써재낀 돈까지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결혼을 해서 잘 보일 사람도 없고 어차피 직장, 집만 왔다 갔다 하는 생활에서 멋을 부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이자 '겉멋'이었음을 느꼈다.




독서모임을 통해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다.

독서모임 선정도서였던 타일러의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읽고 환경에 관심이 생기자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청바지 한 벌을 만들기 위해 쓰는 물의 양이 엄청나고, 질이 그닥 좋지 않은 옷을 대량 생산 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을 빈곤 국가의 어린 아이들에게서 착취한다던지, 어떤 나라에는 옷으로 뒤덮힌 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자 내 옷 쇼핑의 당위성은 돈 쓰고 싶은 사치의 증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구역질이 나기까지 했다.



입지 않은 옷들을 모아 버리면서(새 옷들도 많았다.ㅠㅠ) 다시는 무분별한 쇼핑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 마음으로 5년을 보냈고 매일 조금씩 자라는 아이들의 옷을 빼곤 나나 남편 옷의 쇼핑은 거의 하지 않은 채 잘 버텨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동안 내가 쇼핑을 하지 않고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전에 사놓았던 옷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 많던 옷 중에서도 언제 입어도 눈에 나지 않을 무난한 옷들이 많았고 편한 옷들도 많아서 그 옷들을 돌려 입으며 꽤 오랜시간 잘 버텨온거다.



그렇게 아끼던 옷들도 아무리 애지중지 해도 결국은 낡게 되는 것은 순리인지라 주구장창 입던 옷들이 하나 둘 망가지기 시작했다.

같은 바지를 오래 입다보니 옷감이 늘어나서 군데군데 보기 안좋아졌고, 좋아해서 자주 입었던 맨투맨 티의 소매는 헤져서 올이 풀어지기도 했다.


그런 옷들의 사망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더 입고 싶은데 왜 벌써 망가진거냐고, 내가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그런건가 싶어 계속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옷을 사지 않고 남은 옷들로 버티고 있었는데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정말정말 아끼고 좋아하던 일자 통바지에 락스가 튄 것이다!!!ㅠㅠㅠ

검정색이었는데 락스가 튀어서 어두운 붉은색으로 바뀌어버린거다.

아...XX.(욕 나왔다...ㅠㅠ)


옷감이 늘어져서 쫙 뻗는 맛은 없어졌어도 내 체형을 커버해주고 왠만한 상의들을 입어도 다 어울려서 4계절을 입었던 옷이었는데(한여름 빼고 겨울에도 안에 내복입고 입었었다) 락스에는 이길수가 없었다.



상심하여 남편에게 사건을 말했고 남편은 이 참에 옷 좀 사지 그러냐고 말했지만 또 인터넷으로 옷을 하염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싫고 그렇다고 시내 나가서 이 옷 저 옷 입어보는 재미 또한 잃어버린지 오래라 마냥 스트레스만 쌓였는데 더이상 입을 바지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어쩔 수 없이 온라인 쇼핑몰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바지를 샀고 티를 질렀다.


예전 같았음 옷 사고 택배 기다리는 설레임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안 맞으면 또 반품해야 할건데 어쩌나 싶어 걱정만 생기고, 혹여나 마음에 안들면 어쩌나 싶어 찝찝하다.

무엇보다도 버리려고 담아놓은 내 일자 통바지를 보내기가 아쉬워 어찌 락스 튄 부분만 검은색 매직으로 칠해볼까 궁리하는 지경에 이른 내 모습이 참으로 궁상맞기도 하고 애초에 덜렁대며 칠칠맞게 락스를 사용한 내가 한심하기까지 하여 이 밤 매우 심란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옷이라는 것도 소모품인 것을.

어쩔 수 없이 옷을 사게 되었지만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은 잊지 않고 다른 쪽에서 실천을 해보는 것으로 죄책감(?)을 덜어보자.

또한 만약 옷이 마음에 쏙 들고 잘 어울린다면 아마 5년은 거뜬히 입을 수 있을테니 그것으로 심란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한다.





일자통바지는 얼른 눈 앞에서 치워야겠다.

눈에 보이니 자꾸 쓰다듬고 입고 싶고 버리기가 싫다.ㅠㅠ

망할 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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