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사랑 나라사랑

전남 장성

by 헤레이스

경상남도에서 이제는 전라남도로 간다.


이 곳은 좀 특별하다.

남편은 공부를 하러 간다. 진급이라는 것이 주는 기쁨과 동시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있다.

장성군 삼계면 사창리. 지역 이름도 기억에 쏙쏙 박히는 곳이다.

우리의 두 번째 보금자리의 뷰는 논밭뷰다. 물론 공기 좋고 바로 앞 시골 정거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그야말로 시골 속 한가로움을 즐기는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특별한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다. 대위 진급을 위해 모인 남편 동기들이 한가득이다. 덕분에 나도 남편 동기의 아내들. 아내 동기가 생긴 것이다. 상무대라는 곳은 단지 안에 마트, 빌라, 교회, 식당, 볼링장 등이 다 있다. 그야말로 그 안에서 다 해결되는 곳이고 시골이지만 편리한 삶을 살 수 있는 곳이다. 선배들과 사모님들만 만났던 내가 이제는 동기들을 만나는 것이다. 내 이름을 불러도, 아이의 이름을 불러도 눈치없이 편할 수 있는 곳. 물론 이 곳에도 선배님과 사모님들은 존재한다. 다만 동기들과 놀아도 되는 곳이자 함께 하는 것들이 더 많아지는 곳이다.


장성에서도 나는 참 바쁜 군인아내의 삶을 즐겼다.

아침에는 여전히 신혼이니까 보온도시락에 남편의 점심을 싸줬고, 오전일과를 보내거나 아니면 동기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죽치고 놀기도 했고 교회 전도폭발을 참여하기도 했고 퀼트를 하시는 사모님 댁에 가서 퀼트를 배우기도 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해서 그렇지, 여전히 움직이고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내 동기친구는 나 빼고 3명이다. 현성이 엄마, 준환이 엄마, 그리고 민희씨 이렇게 셋이다.

딱 봐도 둘은 벌써 아기엄마들이고 민희씨와 나는 아직 새댁이라 불리는 출산 전 아줌마들이다.

현성이, 준환이는 아직 돌도 안된 아가들이라 내가 죽치고 놀았던 동기네 집은 그 두 집이다. 남편들의 출신은 다 달랐지만 우리는 그냥 동기다. 동기의 아내이자 동기이고 나이도 동갑이거나 한두살 거의 엇비슷했다. 그러고 보면 뭘 그리 다들 일찍 결혼했는지 모르겠다. 덕분에 이렇게 또래 동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도 알았지만 말이다.


아가들이 어렸으니 딱히 크게 한 일은 없지만 그냥 모여서 밥 먹고 이야기 하고 놀고 편하게 지냈던 순간이고 장성을 떠나면서 우리는 또 다 각자 다른 곳으로 갔지만 이후에도 모이자며 삼목회라는 이름도 만들었었다. 지금은 나 빼고 여전히 다들 군인의 아내로 살고 있고 아가들은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있고 현성이 엄마는 세 아들의 엄마, 준환이 엄마는 남매의 엄마, 민희씨는 아들 둘의 엄마, 나는 딸 셋의 엄마가 되어 있다. 시간은 우리의 삶을 채워가기 보다는 아이들의 성장으로 더 가득 채워졌는지도 모른다.



작았던 안동의 군교회를 떠나 꽤나 큰 상무대 교회에서 나는 어린이부 교사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엉망인 실력이지만 찬양팀 반주도 하면서 즐거운 신앙생활을 했다. 여기서 만난 동기가 소영씨(현성이 엄마)와 민희씨다. 그래서 거의 매일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이다. 각자의 역할로 교회에서 봉사하고 남편들은 군복을 입고 중창단 특송도 하고 참 특별한 교회생활이다. 다들 선배님들이지만 교회에선 집사님,권사님으로 부르고 교회 밖으로 나가면 계급장에 붙은 대로 부르는 참으로 이상한 곳이다. 전도폭발이라는 훈련도 받고 광주 호신대까지 따라 다니며 뭔가를 많이 했던 거 같다.



장성에 살 때까지도 우리는 자동차가 없었다. 그래도 젊으니까 시외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참 열심히 다녔다. 내가 여수에서 고등학교때까지 보내며 광주를 한번도 안가봤다면 장성에 사는 그 몇개월동안 광주를 더 많이 갔던 거 보니 시외버스 타는 재미가 꽤나 있었나보다. 장성하면 생각나는 유명한 게 몇가지 있다. 홍길동 생가, 백양사, 그리고 가을 감이다.


감은 뭐 그냥 망태기에 한가득이 5천원이었으니 실컷 먹었던 거 같다. 우리의 가을 추억 중 하나는 백양사다. 애기단풍이 예쁜 백양사 구경을 위해 꼬불꼬불 시외버스를 타고 갔던 기억. 돌아오는 꽉 찬 시외버스에서 사람들이 엉키고 부딪히고 했던 기억. 사실 백양사의 예쁜 풍경보다 그 곳의 사람들 풍경이 나는 아직도 더 많이 기억에 남는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니 꽤나 특별한 이벤트가 준비중이었다. 여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눈이 같은 전라남도인데 장성에서는 폭설로 내렸다. 남편들은 등교도 하지 않고 눈을 치우기 바빴고 눈이 얼마나 쌓였는지 택배는 며칠 째 못온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래도 마냥 좋았던 우리의 젊은 시절이 그 곳에 눈 속으로 녹아들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눈위로 뛰어 눕기도 하면서 쌓인 눈을 원망하기 보다는 제대로 즐겼던 기억 뿐이다.


등교를 하니 하교시간도 정확해서 남편과 안동에서 즐기지 못했던 삶도 즐겼다. 기억나는 건 하루쯤 우리 만원데이트를 해 보자며 걸어서 읍내를 가고 붕어빵을 사 먹고 가을 국화를 한 다발 사서 왔던 기억이 있다. 소소했지만 그 때만 누릴 수 있었던 우리만의 특권이었다.


웃픈 이야기 하나 하자면 군아파트 자리가 원래는 묘지였다는 소문이 있다. 동기들 중 미혼자들은 한 아파트에 두세명이 쓰는데 그 중 한 동기네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매일 눈이 쾡해서 오는 동기가 있어서 물어보니 밥마다 귀신이 나와서 처음에는 놀래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이야기하고 놀다가 밤을 새고 온다는 것이다. 뭐 아주 아니라고 할수도 없는게 어떤 날 아침 남편도 등교하고 난 뒤 잠시 누워 잠들었는데 나도 가위같은 것에 눌려 까만 형체들을 보고 소리도 듣고 움직이기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기도의 힘으로 겨우 일어났다고 지금도 아이들에게 엄청난 경험이라고 이야기 해준다.


별의 별 일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있던 곳, 동기사랑으로 매일매일 행복했던 장성. 시골이라 더 풍성하고 따뜻한 곳이자 계절마다 그 계절을 온전히 누리게 해 줬던 곳이다. 각자의 자리로 또 떠남을 예고 받고 복권이나 대학 합격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다음 근무지가 정해지면 제각각의 반응과 새학기에 반 편성때 친한 친구 같이 반이 됐는지 찾는 아이들처럼 같은 곳으로 가는 동기 찾기도 했던 곳이 우리 둘의 신혼 생활의 마지막이기도 했다.


자.. 우리는 이제 어디로 근무지가 정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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