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시 - 다 안다는 착각 속에 사는 부모
부모는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산다.
나도 어쩌면 나의 어머니가 항상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면 하고 살았을 착각이다.
내 자식이 내 눈앞에서랑 내 눈밖에서
어찌 하는지 그건 모르는 일이야.
딱 맞는 말이다. 부모는 자식을 가장 잘 알고 다 안다는착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아마 그 착각이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위한 부모 자신의 안전장치일지도 모른다.
A를 만나기 전에 사전 정보를 전달받았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초5 여자아이
종합심리검사 진행필요, 경계선지능
친구들에게 지적당하거나 하나하나 친절하게 도움주지 않으면 울거나 소리를 지를 때도 있음
그런데 A의 부모가 요청한 것은 어려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 같으니 문해력수업 위주로 해 달라는 것이다. A의 정보와 부모의 요청사항은 나에게 한 손으로 두개의 수박을 들 것을 요구하는 거 같았다. 첫 시간을 준비하면서 어떤 그림책과 어떤 이야기로 함께 해야 할지 고민 또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질문도 많은 사전검사지와 그림책 한 권, 활동지 두개를 챙겨서 떨리는 첫만남을 위해 학교로 갔다. 이 수업이 어떤 것인지 이미 이전해에 했던지라 A는 어색함도 없었고 오히려 너무 밝게 나를 맞아주었다.
인사를 나누고 내 이름을 먼저 말하고 수업을 시작하기 전 검사지를 내밀었다. 검사지의 질문과 5-0까지의 숫자를 체크하면서 나는 A를 사전탐색이라도 하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의외로 조곤조곤 잘 대답을 해 주었고 예상보다는 꽤나 밝고 긍정적이고 자기애가 있는 아이었다. 물론 자기소개도 아주 잘했다. 다만 질문지의 어려운 단어나 질문의 요지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달리 생각하면 우리도 그 수많은 질문이 있는 질문지를 받으면 한참 생각할 때가 있지 않던가.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질문과 답이 있다.
학교 친구들과 있을 때 마음이 편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아이는 시끄럽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싫고 그냥 가만히 있거나 선생님이 무얼 하고 있는지 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앞으로 그 시간에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떠냐고 권유를 했고 오케이를 하진 않았지만 거부도 하지 않았다.
만나기 전날은 병원 검진으로 학교에 오지 않았는데 병원에서 역시나 설문지를 체크했고 설문지를 보면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다는 말에 '아~ 그래~ 이 아이는 이 설문지가 자기를 계속 평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해력수업 위주로 해 주세요! 했던 부모님의 요청이 있었으니 지금은 어떤 것들을 배우고 있는지 슬쩍 물어보았는데 요일별로 일정이 꽉 차 있었다. 언어센터, 복지관 댄스, 잠시 쉬는 주산등 참 많은 것을 해내고 있는 아이다. 부모는 아직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경계선지능. 어느 부모가 조금 문제가 있다고 그걸 검사하고 또 아이를 좋지 않는 단어로 판단하고 싶을까. 누구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A의 부모는 언어센터와 복지관을 데리고 다니면서도 받아들이기 싫고 단지 문해력이 부족해서 그런것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가져간 그림책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 그림활동지 두개를 꺼냈는데 소리를 지르며 반기더니 미술활동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와 영화 음악까지 알려준다. 심지어는 일본어와 영어로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서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첫 대면을 나만 걱정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흥얼거리며 노래를 다 부르고 스스로 뿌듯해 하는 A를 보며 나 또한 흐뭇했다.
다만 얼굴 표정을 그리는 활동이었는데 A는 얼굴의 테두리와 머리 일부분만을 색칠하고도 만족해 했다. 6개의 얼굴 표정을 그리는 것이 꽤나 어렵게 느껴지고 거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느꼈지만 A는 자기가 하는 모든 것에 만족도가 높았다.
첫 시간 내가 선택한 그림책은 상담의 첫 그림책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책이다. 문해력을 이야기했던 부모의 요청과는 너무도 다르게 글밥도 적은 그림책 수업인데, 심지어 오늘 그림책은 글이 없다.
그림책의 표지를 보여준다. 표지만 보고도 자기가 만났던 바다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한다. 여름을 기다리고 있고 물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A는 저런 시선으로 교실에서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을 바라보고 친구들을 바라보고
슬쩍 누군가 다가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A가 그 바다에 뛰어들고 파도와 부딪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그림책을 첫 시간에 준비했다.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지만 또래와 놀이의 공간이기도 해야하지 않을까?
자기만의 바다놀이를 할 그 날을 기대하며 A와 그림책의 장을 마지막 덮고 질문을 했다.
그림책 읽고 어떤 기분이 들었어?
그냥 시원했어요!
그거면 됐다. 웃으면서 이야기해주는 그 표정이면 됐다. 그냥 마음이 조금 시원해졌으면 됐고 첫만남에 좋아하는 색이 하늘색이라며 책을 반겨주니 감사할 뿐이다.
글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때론 그림만으로도 자기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좋겠다. 글을 읽어야 문해력이 좋아진다는 논리는 없다. 파도와 놀던 주인공을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내는 A와 나는 앞으로 즐겁게 놀아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이제 A가 아닌 하늘이로 글에 담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