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살피는 방법을 알려줄게.

2차시 - 목요일 오후, 우리만의 약속

by 헤레이스

목요일 오후는 이제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이다.


어린 왕자와 여우가 서로를 기다렸던 것처럼, 우리도 목요일 오후 세 시를 기다리기로 했다.

아직은 두 번째 만남. 낯선 교문을 지나고, 보안관실을 거쳐 천천히 하늘이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교실로 가기도 전에 복도에서 가방을 멘 채 환한 웃음으로 서 있는 하늘이를 마주한 순간,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진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그것도 아직은 서먹한 관계 속에서 먼저 다가와주는 마음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고마운 마음에 저절로 고개를 든다.




나는 언제나 아이들을 만날 때, 작은 간식 하나라도 꼭 준비한다.오늘은 노란색 얼라이브 망고주스를 들고 왔다. 자기가 망고를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냐며 너무 좋아한다.


5월의 햇살이 벌써 여름을 닮아가고, 꽤나 더운 날이었지만 하늘이는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주스를 건네자 그제야 살짝 마스크를 내리고 시원하게 한 모금. 하지만 금세 다시 마스크를 꾹 눌러쓴다.
두 번째 만남에 처음 본 얼굴, 그리고 다시 감춰진 얼굴. 그 모습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어떤 의미일까. 조심스레 가슴속에 담아둔다.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볼까 고민이 많았던 내 시선이 창문 너머 텃밭에 머문다.


나도 무척 좋아하는 텃밭 가꾸기. 하늘이에게 묻는다.

"저기 보이는 텃밭은 누가 해?"

"저기 우리 반도 있어요~ 제 꺼는 저기저기 저거에요~"

'몰라요'라는 대답이 돌아올까 살짝 긴장했지만,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주는 하늘이가 반갑다.
상추가 너무 커졌다는 이야기부터, 가져가긴 해도 집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까지.조금은 아쉬운 듯한 표정에 마음이 찡해진다.
다른 친구들의 상추 이야기를 꺼내자 갑자기 굳어지는 얼굴.
' 그래, 지난 일주일도 하늘이에겐 쉽지 않았겠구나.'




하늘이는 외동이다.혼자라서 더 많이 사랑받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이의 말끝마다 비어 있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아직은 단정짓기 어려워 오늘은 조심스레 그 이야기는 묻어둔다.


리디아 브란코비치 글그림/장미란 역 책읽는곰


오늘 함께 읽으려던 책 꺼낸다. 꽤 글이 많은 그림책이다.
초등 고학년인 하늘이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내가 책을 잘못 골랐다는 걸 알았다.아이의 눈에는 감정을 이해하기 위한 긴 문장들이 아니라 까맣고 답답한 글씨들만 가득했을 테니까. 그래서 과감히 글을 읽는 걸 멈추고, 그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살피다"는 어떤 의미일까?
하늘이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나는 조심스레 설명해준다.

"다독여주고, 살펴주는 거야.
스스로를 보호하는 거지."


그림을 보며 감정을 이야기하고, 천천히 책을 덮는다. 아이의 얼굴에 조용히 환한 빛이 스며든다.
실패한 그림책 선택이었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준비해간 독후활동지를 꺼낸다.


하늘이는 글보다는 그림을 더 좋아하는 아이다.
"나의 감정 호텔에 찾아온 감정 손님은 누구일까?"
하늘이는 문어를 그린다.그리고 문어에 대한 모든 지식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나는 모르는 척, 새로 알게 된 척, 놀라는 척 하며 들었다. 하늘이는 더욱 신나서 이야기한다.


이야기 속에 빠진 아이의 눈동자가 얼마나 반짝이는지, 그동안 누구도 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던 걸까.
문득, 어른들은 왜 아이의 이야기를 흘려보냈을까. 아는 얘기라고 단정짓고, 아이의 마음을 묵살하지는 않았을까.




그리고 마지막 활동.
"너만의 감정방을 그려보자."
민트를 좋아한다던 하늘이는 뜻밖에도 검정과 보라색 색연필을 집어든다.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하늘이를 지켜보고 있는데 먼저 말을 꺼낸다.

"놀이공원에서 바이킹 탔을 때 그림이에요. 너무 떨리고 무서웠어요." 두려움을 느꼈던 그 순간이 하늘이의 감정방 안에 그대로 담겼다.그 순간을 이야기해준 것만으로도 참 고맙다.


두려움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말보다 행동이 먼저라는 걸, 하늘이와 함께하며 배운다.
그래서 꺼낸 해적 룰렛 게임. 하늘이와 번갈아 칼을 꽂으며 감정을 나눈다.


"떨려요."
"조마조마해요."


"그게 바로 두려움이야.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사람 말고, 바로 너 자신을 보살펴야 해."


"어떻게요?"

"이렇게, 두 손으로 나를 안아주는 거야."


우리는 서로를 안아본다. 그리고 ‘괜찮아’라고 말해본다. 어색하지만, 하늘이는 웃으며 말한다.


“저 진짜 괜찮아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가가 시큰해진다.하늘이의 말 한마디에 담긴 용기와 따스함이 내 마음을 두드린다. 오늘 하늘이가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을 보살피는 법’을 가슴 한켠에 담아갔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음 주 목요일 오후 세 시,
우리는 또 다시 서로를 기다릴 것이다.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매거진의 이전글문해력수업 위주로 해 주세요!